지난 번 독서관련 회의에 참석했다가 독서의 정의를 두고 짧은 논쟁이 있었다.
글자로 된 모든 콘텐츠를 읽는 행위를 독서로 볼 것인지 아니면 어느 정도 책의 형태를 갖춘 콘텐츠를 읽는 것만 독서로 간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었다. 물론 결론은 나오지 않았고 학문적으로 조사 한 후 정의를 내려 달라며 사회자가 정리했었다.
전문가적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면 독서의 정의는 콘텐츠가 아니라 행위의 결과에 기준을 두어야 한다. 정형화된 책을 읽었지만 지식, 느낌, 깨달음 등 어떤 것도 얻지 못한다면 이것을 독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잡지 또는 신문에 있는 짧은 글을 읽었지만 중요한 정보를 얻거나 감동을 받았다면 이것은 무엇일까?
독서(讀書)라는 글자를 잘 살펴보면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독서(讀書)는 ‘책을 읽음’이라는 명사이다. 먼저 읽을 독(讀)의 의미를 살펴보면 첫째, 음대로 소리 내어 말로써 나타내는 것이고 둘째, 글을 보고 거기에 담긴 뜻을 헤아려 아는 것을 말한다. 이 두 가지의 읽기는 목적에 따라 사용된다. 글을 배우는 것이 목적일 때는 음대로 소리 내어 말로써 나타내는 읽기를 사용하고 글을 익힌 후에는 글을 보고 거기에 담긴 뜻을 헤아려 아는 읽기를 사용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글자를 익힌 후에도 글에 담긴 뜻을 헤아려 알기보다는 글자에 집착한 독서를 하는 것이 아쉬운 현실이다.
글을 익힌 후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읽기 방법은 글에 담긴 뜻을 헤아려 아는 것이다. 그런데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 의미를 살펴보면 첫째는 사물이나 상황에 대한 정보나 지식을 갖추는 것이고 둘째는 어떠한 사실을 마음속으로 느끼거나 깨닫는 것이다. 즉 안다는 것은 정보를 자신의 지식으로 만들거나 느낌과 깨달음을 얻는 것을 말한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책을 읽어도 아무것도 자신의 지식으로 만들지 못하고 느낌과 깨달음이 없다면 이것을 독서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이런 독서를 ‘노동’이라고 주장한다. 실제 우리 주변에서도 독서를 노동처럼 하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다음으로 책 서(書)의 의미를 살펴보자. 옛날의 정보 전달 및 학습 수단은 유일하게 책이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책은 정보 그 자체였던 것이다. 하지만 현대는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서 정보를 얻는다. 결국 정보를 담은 모든 콘텐츠가 책 서(書)의 범위에 포함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독서(讀書)는 다양한 콘텐츠의 의미를 읽음으로써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느낌 또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
<독서전략연구소 곽동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