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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두의 시선]호국 경찰의 魂 차일혁 총경

 

 

 

 

한국전쟁 중에는 전투경찰대 제2연대장으로 근무하며 조선 공산당 총사령관 이현상 등을 토벌했다… 그는 귀순을 유도해 많은 빨치산의 목숨을 살렸으며 이현상을 화장해 장례를 치러줬다.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다. ‘호국(護國)’은 ‘나를 지키고 보호하자’는 말이고, ‘보훈(報勳)’은 ‘보훈에 보답한다’는 말이다. 즉, ‘호국 보훈의 달’은 ‘나라를 지키고 보호하며, 나라를 지킨 사람들의 은혜에 보답하는 달’이다. 최근 우리의 안보 의식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해마다 6월 6일 가정에 걸린 태극기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크고 작은 대북 안보 문제가 불거져도 무관심을 보이는 이들도 많다.

우리는 긴 역사를 간직한 만큼 비극적인 일들도 많이 벌어졌다. 고조선과 고구려·백제·신라 삼국, 고려와 조선, 그리고 대한민국이 들어선 이후에도 크고 작은 외침에 시달려야 했다. 다행히 지금 우리는 평화롭게 지내고 있는데, 그럴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킨 이들의 희생 덕분이다. 호국 보훈의 달이 되면 생각나는 인물이 하나 있다. 그는 유관순, 안중근, 안창호처럼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국방부 전쟁기념관에서 선정한 경찰의 호국 인물인 권영도 경위, 라희봉 경감, 최규식 경무관(이들 세 명은 한국전쟁 유공자)도 아니다. 바로 2011년 8월에 경찰청에서 총경에서 경무관으로 승진 추서한 차일혁 경무관이다. 차일혁 경무관은 평생 동안 나라 사랑을 실천한 분이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가로, 해방 이후에는 경찰로, 한국전쟁 때에는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리고 전쟁 이후에는 불우한 학생들을 도와주기도 했다.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했던 것이다.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중국으로 건너가 중앙군관학교 황포분교 정치과를 졸업한 뒤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1938년부터 1943년까지 조선의용대에 들어가 팔로군과 함께 항일유격전 활동을 펼쳤다. 해방 이후 귀국한 그는 유격대를 결성해 북한의 인민군과 싸우던 중 경찰에 특채돼 빨치산 토벌대 대장으로 복무했다. 한국전쟁 중에는 빨치산 소탕을 담당하는 전투경찰대 제2연대 연대장으로 근무하며 조선 공산당 총사령관인 이현상 등을 토벌했다. 이때 70명의 결사대원으로 2천여명의 적을 격파했고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도 사살했다. 그러나 생명을 소중히 여겼던 그는 가급적 귀순을 유도해 많은 빨치산의 목숨을 살렸다. 그리고 사살한 빨치산 총사령관 이현상을 화장해 하동 송림에 뿌리며 장례를 치러줬는데, 이로 인해 상부로부터 질책을 받아 부대원들에게 태극무공훈장이 3개나 수여됐지만 자신은 받지 못했다.

1951년 5월, 전라북도에 새로 주둔한 국군 8사단과 군경합동 회의를 하기 위해 차일혁은 도계로 갔다. 회의에는 지리산 전투경찰대 사령관 신상묵을 비롯한 경찰 지휘관들과 최영희 8사단장 및 8사단 참모들이 참석했다. 회의를 마친 뒤 따로 모인 전투경찰대 지휘관들은 화엄사 소각 명령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이 명령은 숲이 우거질 시기인 녹음기에 빨치산들의 근거지가 될 만한 사찰 및 암자를 소각하라는 것이었다. 화엄사 지역은 8사단 방득윤 대대장이 맡고 있었다. 그러나 방득윤 대대장은 이 명령을 수행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고, 이를 알게 된 차일혁은 방득윤 대대장에게 해결책을 제안했다. 화엄사 대웅전 등의 문짝을 떼어내 문짝만 소각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공비들의 은신처를 없애고 관측과 사격이 용이해지므로,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방득윤 대대장도 이에 동의했고, 이로써 화엄사는 전체 사찰이 소각될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인 1954년에 그는 충주경찰서 서장으로 발령받았다. 그는 충주직업소년학원을 설립해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불우청소년들에게 학업기회를 제공했다. 이후 공주경찰서장이 된 그는 1958년 금강의 곰나루에서 가족과 함께 물놀이를 하다가 38세의 나이에 타계했다. 화엄사는 화엄사 경내에 그를 기리는 공적비를 건립했다. 2008년에 문화재청에서는 화엄사 등의 명찰들을 보존한 차일혁 경무관에게 감사장을 추서했다. 경찰교육원 강윤식 교수는 경찰 혼의 역사를 찾아 차일혁 총경뿐 아니라 자료를 찾고 이를 토대로 경찰의 역사와 정신을 일깨우고 있다. 진정한 나라 사랑은 국가 안보뿐 아니라 국민, 그리고 문화까지 사랑하는 것이다. 이 시대의 경찰이라면 차일혁 경무관의 삶의 자세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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