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아침 반가운 얼굴들이 한적한 관공서 마당으로 모여든다. 모두들 반갑게 손을 잡으며 활짝 웃는다. 아침부터 예고된 비가 서둘러 하루 전날 밤부터 내려 나들이 길을 열어 준다. 청명한 하늘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상큼했고 주위의 나무들을 살펴보니 벌써 눈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혹한에 사무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있을 것만 같았던 생각은 말 그대로 기우였다. 머리 위에서 들리는 새소리까지도 한결 맑고 높다.
고속도로를 달리고 굽이굽이 산모롱이를 돌다보니 하늘빛을 쏙 빼닮은 바다가 눈으로 들어온다. 잠시 휴게소에 들러 해우소를 다녀온 사람들과 커피나 그밖에 간식거리를 손에 든 사람들과 한 데 모여 사진도 찍고 또다시 차에 올라 차창 밖으로 보이는 바다와 한참이나 동행을 한다.
연휴의 관광지는 음식점마다 북새통이다. 빨리 달라는 성화에 신발이 안 보인다는 투정을 들으며 들어간 곳은 기대를 능가하는 실망을 안겨준다. 뜨는 둥 마는 둥 수저를 놓고 커피를 한 잔 들고 낯선 곳에서 길을 더듬어 바닷가로 향했다.
멀리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보이고 나도 그 길을 걸었다. 오후의 봄볕이 쏟아지는 바다는 평화로운 그림이다. 부표에 빨강과 흰색의 대비가 선명한 깃발은 북서풍을 가리키고 있어도 태백준령이 찬 공기를 막아주는 바다는 바람도 포근하다.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울고 있다. 벌써 한참을 울었는지 빨리 차로 오라고 성화다.
낯선 항구의 풍경도 곧 어둠에 묻히고, 돌아오는 차창 밖으로 도시의 불빛이 달려간다. 평소에 자주 걷지 않는 편이라 모처럼 몇 km 걸은 티를 내는지 발가락이 아파 차 안에서 신을 벗고 등을 기대고 버스 관광의 필수덕목이라는 한 잔을 치과진료중이라는 이유를 들어 거절하고 눈을 감아 보지만 이번에는 묵직하고 두꺼운 책이 무릎 위에 놓인다. 모두들 노래만 하고 살았는지 가수들이 보면 통곡을 하고 갈 만큼 절창이다. 게다가 신나는 댄스곡으로 잘도 하는데 나는 어쩌다가 하는 노래라는 것이 남들 한참 달아오른 판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라 한번은 짓궂은 친구가 큰 소리로 아멘 하고 놀린 적도 있었다.
짧은 하루 나들이의 피곤함은 있었지만 오랜만에 일상에서 벗어나니 잠시 휴식에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낀다. 장마철에 잠깐 해 나는 날에 거풍을 하고 난 기분으로 돌아왔는데, 방에 들어와 가방을 내려놓고 다리를 쭉 뻗으니 그제야 찾아오는 안도감은 또 무언지.
다음날 아침 찬 공기에 어제의 그 바다가 간절하게 떠오른다. 금빛 윤슬이 찰랑거리는 봄 바다와 포근한 바람이 다시 그리워진다. 부지런히 아침을 먹고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따라 잠시 집 주변으로 나간다.
지저분하게 흩어진 잡석 틈에서 밥풀떼기만 한 새싹이 보인다. 아직 무슨 풀인지 구분이 되지는 않으나 더 이상 건드리지 않고 다시 걸음을 옮기니 감장얼음을 피해 쇠별꽃이 벌써 손가락 두 마디나 자라고 있었다. 봄은 그 바다에 머물지 않고 앞질러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걸 정작 나만 몰랐으니….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 작가 신인상 수상 ▲가평 문학상 수상 ▲가평문인협회 이사 ▲플로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