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 중에 요즘 노래는 무슨 소린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하셨다. 우리는 잘만 알겠는데 왜 그러시는지 그때는 몰랐다. 연예인들도 누가 누군지 그 얼굴이 그 얼굴 같다고 하셔도 공감이 가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내가 바로 그때가 온 것 같다. 도무지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으니 따라 부르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인기 아이돌 그룹으로 불리는 쪽은 한결같이 예쁘고 서구적인 얼굴과 몸매로 시선을 끌며 관객들을 사로잡고 틈틈이 예능프로에서도 두각을 나타낸다. 어쩜 그렇게 말도 잘하고 재치가 넘치는지 한 마디로 팔방미인들이다. 그런 아이돌 그룹 하나 키우는 데 몇 억을 쏟아 붓는다는, 그들이야말로 태생 미인이 아니라 시대의 요구를 읽고 철저하게 기획 관리로 탄생한 성형미인인 셈이다. 누구나 제 밥그릇은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도 소용이 없는 세상이 된 지 오래다.
기왕 노래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민요풍의 노래로 가수이름이나 가사도 가물가물하지만 갈수록 공감이 가는 노래가 있다. 할아버지에게 쌈지 안에 용돈 삼십 원이 있었는데 엿 사 달라, 떡 사 달라는 손자들의 재롱에 결국 빈 쌈지가 되고 만다는 노래인데 요즘은 할아버지 소리 들으려면 교육부금 통장을 내놓아야 한단다. 쌈짓돈으로는 엄두도 못 낼 일이 점점 코앞으로 다가온다.
예단으로 받은 밍크코트를 입고 좋아하면서 다이아 반지를 낀 손을 뻗치고 우쭐거리며 하던 것이 요즘은 밍크코트 주머니에 다이아 반지를 살짝 넣어 보내는 게 유행이라는 대사는 쌈짓돈은커녕 통장으로도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다. 물론 그런 말을 그대로 따르고 살아야 하는 바보는 없겠지만 서민들의 주머니는 갈수록 힘을 잃는다. 하기야 힘이 빠지는 게 어디 주머니뿐일라고….
방에는 대학 졸업을 미루고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아들이 모처럼 집에 와서 늦잠을 자고 있다. 아르바이트로 용돈과 학원비를 벌어서 보다 나은 자리를 꿈꾸며 뭔가 이루어보겠다고 하지만 잠든 아들의 얼굴도 그리 편안해 보이지 않는다. 벌써 몇 차례나 하신 말씀을 처음인양 반복하시는 어머니와 속칭 대학5학년 아들과 노후 대책이라고는 전혀 없는 베이비부머 세대 부부가 맞물려 내는 소리는 아름다운 협주곡일 수만은 없다.
가끔은 지원이 부족해서 불만인 쪽과 그만큼도 못 받는 사람들이 허다하다는 볼멘소리를 하다가도 더 주지 못해 마음이 아픈 단순한 갑을 관계가 아닌 핏줄로 이어지는 사랑에 목이 메는 순간이 있다. 그럴라치면 우리는 곧바로 모든 것을 주머니 탓으로 돌린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면죄부를 주면서 웃는 낯으로 위로한다.
모처럼 길을 나섰더니 창밖으로 보이는 앙상한 가지에 연하게 파르스름한 안개가 끼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리 겨울이 길고 추워도 이렇게 약속처럼 찾아오는 자연을 보면 주머니보다 강한 믿음을 발견한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 언뜻 스친 노랑이 바로 개동백꽃이었구나 하자 동시에 머리에 밝은 빛이 켜진다. 이 봄을 축복하는 촛불 앞에서 주머니 생각은 잠시 접어도 좋지 않을까.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 작가 신인상 수상 ▲가평 문학상 수상 ▲가평문인협회 이사 ▲플로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