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비가 오고 바람이 불더니 오랜만에 햇살이 거실 구석까지 퍼지는 아침이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눈부시다. 밖에도 마당 구석구석까지 환하게 햇살이 들어섰고, 꽃밭이며 텃밭까지 눈이 부시게 깔끔하고 투명하게 빛나는 것을 본다. 나는 이렇게 흐린 날을 지나 화안하게 퍼지는 아침햇살을 좋아한다.
텃밭엔 비가 흙을 촉촉이 적셔주어 해토되면서 뿌려놓았던 상추, 쑥갓, 아욱 씨앗들이 투명하도록 푸른빛을 띠고 치솟아 오르고 있다. 야채뿐만 아니라 야채들이 자라는 데 지장을 주는 잡초들까지 기승을 부리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돋아나고 있다. 비온 뒤 햇살은 이렇듯 모든 식물을 잡초며 야채를 구별하지 않고 가꾸지 않아도 잘 자라게 한다.
해와 바람이 좋은 날은 빨래를 하고 싶어진다. 나는 서둘러 그늘 없고 바람과 햇살이 잘 드는 마당 한쪽에 빨랫줄을 팽팽하게 설치하고 바지랑대를 바쳐 놓았다. 집안의 눅눅하고 칙칙한 옷가지며 침구들을 빨랫줄에 널고, 서둘러 세탁한 흰 빨래들을 푹푹 삶아서 널고 나니, 엄마가 명절을 앞두고 사람을 맞이하기 위해 집안의 모든 집기들이며 빨래들을 마당에 펴 널고 분주하게 오가던 날이 생각난다. 그때나 지금이나 햇볕은 빨랫줄에 넌 것들을 속속들이 파고들어 뽀송뽀송하고 촉감 좋은 새것으로 만들어 준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모든 것들도 그렇게 물에 헹구어 햇볕에 말려내어 뽀송뽀송 살아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아니, 우리 사는 이치가 다 그런 것인데 그것을 모르고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 번쯤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모르고 지나쳤던 것을 바로 보는 햇살 같은 시간이 찾아온다면 스스로를 햇살에 말려 처음의 그 신선함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신을 자꾸 일깨워 습관된 것들을 고쳐나갈 때 자신이 더욱 성숙해질 것이다. 그래서 사람 사는데 종교가 존재하여 자신을 자꾸 돌아보고 갈고 닦는 것이 필요한 것이리라.
살면서 많은 시간을 절망을 느끼거나 수렁 같은 침체된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그리고 내 주위의 모든 것이 늪처럼 느껴지고 그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버둥거릴수록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든다는 것을 느낄 때 내 주위의 진정한 친구가 필요했다. 친구는 허심탄회하게 나를 이야기 해주었고, 나는 그 조언을 들어 새로운 나로 일어설 수 있었다. 또한 도서관의 책들은 친구 같아서 많은 직언을 나에게 들려주고 나를 토해내듯이 연필 들어 써내려가는 몇 줄의 글이 나를 위안하는 길이기도 했다. 그것들이 나를 말려주고 통풍해주고 나를 살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화창한 햇살 속에서 텃밭에 자라는 야채와 풀들이 한층 더 싱그럽기만 하다. 빨랫줄의 빨래들이 솔기의 실오라기까지 햇살을 받아 톡톡 불거지고 빨래들이 뽀얗게 살아나기 시작한다. 눈부시게 흰 빨래에 얼굴을 묻고 숨을 쉬어본다. 빨래냄새가 상큼하다. 나는 햇살이 지기 전에, 눅눅한 이슬이 내리기 전에 뽀송한 빨래들을 걷어 차곡차곡 개면서 나의 햇살 가득한 마당 하나를 그려본다. 나를 보일 수 있는 친구와 한 줄의 글에 대해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사)한국문인협회 시흥시지부장 ▲시집 『연밭에 이는 바람』외 1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