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오전이다. 이제 막 배회를 시작한 햇살을 거느리고 나만의 여유를 만나러간 공간. 나는 친숙한 메뉴판을 검색하고 오늘의 데이트 상대를 고른다. 깔끔하고 진중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주한 나. 나는 오늘 또 다른 소박한 행복을 찾고 싶어 하는 것이다. 행복은 간혹 의외의 공간에서 보너스로 얻어질 때도 있고, 전혀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잔잔한 감동으로 또는 폭죽처럼 쏟아지는 희열로 찾아오기도 하는 것.
지난여름 터키 여행 중의 일이다. 우리가족은 밤새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이스탄불에서 전철을 타고 이동하여 아침 아홉시, 문을 열자마자 아야 소피아 성당과 블루모스크를 관람했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 밤 열두시부터 시작될 열두시간의 버스여행을 위한 차표를 구하고 나니 몇 시간의 여유가 생겼다. 그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다시 이스탄불로 들어와 터키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갔을 땐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순간이었다. 더 이상은 도저히 걸을 수가 없다는 생각을 했지만 우리가 두렵지 않게 들어설 수 있는 공간은 아무 데도 없었다. 섭씨 40도를 향하고 있는 터키의 여름 날씨를 야외에서 견뎌내기란 너무나 힘들었다. 정말 간절히 쉴 공간이 필요했던 그 순간, 우리 눈에 낯익은 카페 하나가 들어왔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동시에 우리는 ‘야호’를 외치며 환호했다.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나라에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피로와 싸우다 만난 낯익은 카페. 한국에서도 자주 들르곤 했던 S카페였기에 메뉴판이나 인테리어가 거의 흡사하여 하나도 낯설지 않았다. 바나나·커피 프라푸치노 한 잔씩을 주문하고 휴대전화를 충전하고 시원한 에어컨을 마음껏 즐기면서 화장실을 부담 없이 활용할 수 있는 공간. 그곳에서의 두 시간은 우리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충전해 주었다. 평소에는 그저 대화의 공간으로, 차 한 잔을 목적으로 만났던 그곳이 의외의 낯선 나라에서 또 다른 큰 행복을 나에게 선물해 주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갖가지 모습으로 보석처럼 묻혀있는 행복을 캐내느라 여념이 없다. 때로는 불행의 가면을 쓰기도 하는 도처에 숨어 있는 그 행복을 캐내는 건 쉬우면서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그 행·불행의 잣대가 각자의 마음속에 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네 인생을 덤덤하지만 어쩌면 실감나는 한 판의 감동적인 축제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축제에는 결코 희열의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준비하는 고통을 인내하는 과정과 중간 중간의 이벤트를 위한 숨고르기의 잔잔한 휴식시간도 필요하다. 물론 축제의 클라이맥스 뒤에 따르는 허망함과 우울감 또한 있게 마련일 것이다. 지금 내가 펼치고 있는 내 삶의 축제의 과정은 어디쯤에 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의 축제를 꿈꾸며 행복한 내 삶을 위한 이벤트를 나름대로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낯선 나라에서 얻은 의외의 행복, 밤하늘의 달이 유난히 밝아 보이는 날의 설렘, 마음에 쏙 드는 책 한 권을 읽어낸 순간의 기쁨 등등. 오늘도 나는 내 인생의 현재진행형 축제를 위해 그런 작고 소박한 행복을 캐내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을 뿐이다.
▲에세이 문예 등단 ▲한국 에세이 작가연대 회원 ▲평택문협 회원 ▲독서토론논술문화원 원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