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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우물가의 情 다시 나눠요

 

조용한 아침이다. 한참 집안 일로 분주한데 방송소리가 들린다. “알려드립니다. 오늘 저녁 마을 부녀회의가 있으니 한 분도 빠지지 마시고 마을회관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마을 부녀회장이 회원들 집합하라는 방송이다. 마을에서 자주 만나지 못하니 얼굴도 잊어버리겠다며 다달이 만나 예전같이 돈독한 사이로 지내보자고 해서 하는 부녀회의다.

예전엔 마을 대동우물이 사랑방 역할을 했다. 물을 긷거나 빨래를 하면서 집집이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집안에 크고 작은 일을 오랜 경험이 있는 형님들의 조언으로 일의 진로를 정하기도 했다. 첫새벽부터 물을 길러 와 하루 일과가 시작되었고, 오전 아홉시쯤 되면 우물은 여인들이 빨래하는 풍경으로 바뀐다.

그 시절 곱디고운 새색시들은 선배 형님들의 보호를 받기도 했지만 여차하면 구설수에 오르기 십상이어서 말과 행동을 조심하여야했다. 한쪽에서 빨래를 하며 마을 형님들이 구수하게 펼치는 집안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을 돌아가는 일을 알 수 있었고, 어떻게 처신해야 어려운 시집식구들과 잘 어울리며 살 수 있는지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때로는 웃는 일로 우물가가 시끌벅적하기도 했고 때로는 슬픈 일로 함께 눈물짓던 우물가였다.

이젠 집집이 수도를 놓고 세탁기로 빨래를 하니 빨래터가 필요 없게 되어 대동우물은 폐허가 되었다. 게다가 담장 넘어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 나누던 일도 공터마다 공장이 들어서 집과 집을 가로 막으니 서로 얼굴 볼 일이 뜸해진다. 그리고 집집마다 자동차가 있어서 집을 나서면 힁허케 마을을 빠져나가니 사람을 만나는 일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이 되자 형님들이 한 분씩 오기 시작하더니 부녀회원들이 거의 다 모인 것 같다. 참 정다운 얼굴들이다. 내가 처음 이분들을 만났을 때는 새색시시절이었고 형님들도 곱기만 하던 시절이었는데 60대 중반이 훌쩍 넘으셨다. 이젠 예전의 팽팽하게 고운 모습은 찾아보기가 힘들고 얼굴은 주름지고 허리 굽고 다리 아파서 잘 펴지도 못하고 이젠 영락없는 할머니 모습이 되셨다. 물론 그 시절 새댁이던 우리들도 늙수그레한 모습이지만 동네 형님들과 만나면 우린 지금도 예전의 그 새댁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부녀회는 마을에 새로 이사 온 젊은 내외를 소개시키며 시작된다.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은 동네에 젊은이의 참여는 새로운 분위기로 만들어 준다. 회의 내용은 우리들의 노년을 즐겁고 아름답게 보내기 위해서 우린 예전의 대동 우물에서 물 긷고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그 시절처럼 인심 좋고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지 한 가지씩 의견을 나누어 보자고 하신다. 잘 쓰지 않지만 다달이 만나서 우물을 청소하고 정비하는 것도 좋겠다며 모두들 우물에 대한 일을 회상한다.

바쁜 시간을 쪼개서 서로 얼굴 맞대며 살고자 하는 마음들이 아름답기만 하다. 옛일을 이야기하고 비운 자리에 새삼 훈기가 도는 것은 웬일일까. 집으로 돌아가는 구부정한 형님들의 뒷모습이 한결 정다워 보이고 안쓰러워 보이는 것도 다시금 살아나는 훈훈한 인정의 탓이리라.

▲(사)한국문인협회 시흥시지부장 ▲시집 『연밭에 이는 바람』외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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