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16 (화)

  • 맑음동두천 25.8℃
  • 구름조금강릉 27.3℃
  • 맑음서울 26.6℃
  • 구름많음대전 25.0℃
  • 흐림대구 22.6℃
  • 흐림울산 23.8℃
  • 구름많음광주 24.8℃
  • 흐림부산 27.2℃
  • 구름조금고창 25.2℃
  • 제주 24.5℃
  • 맑음강화 25.7℃
  • 구름많음보은 24.4℃
  • 구름많음금산 25.9℃
  • 구름많음강진군 26.3℃
  • 흐림경주시 22.1℃
  • 구름많음거제 25.3℃
기상청 제공

[생활에세이]미안은 짧고 평안은 길다

 

지나간 장날에 노점상들 사이에 얼굴을 붉히는 일이 있었다. 대개가 그렇듯이 사소한 일에 서로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이유인즉 장을 돌며 장사를 하다보면 장터에서 서로 만나고, 그러다보면 자연 얼굴을 익혀가며 친분이 생기고 정도 들어 서로를 생각해주는 사이로 발전해 말 그대로 이웃사촌처럼 지내게 된다. 장마다 옷을 파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가 자리를 잡지 못한 이웃사촌의 사정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는데 마침 한 장 걸러 오는 자리가 비어 있어 그 자리를 얘기해 주었다. 접시나 공기 수저 같은 그릇을 파는 노점상이 좁은 자리를 비집고 물건을 펼치게 되어 다행이라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후부터 옆에서 묘목을 파는 사람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고, 옷장수가 찾아가 양해를 구하고 사과를 해가며 주위에서 양쪽을 한 자리에 불러 화해를 붙이고자 했으나 묘목장수는 들은 체도 안 하고 계속 뭐 씹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태가 이쯤 되자 계속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던 사람도 지치고 은근히 속이 치밀어 될 대로 되라며 빠지고 그릇장수는 오자마자 된 시집을 만나 보따리를 싸라는 지경에 이르러 이웃사촌끼리 뜨악하게 지나갔다.

언제나 아침을 서두르게 하는 소리는 옷장수의 옷걸이 설치하는 소리와 철물노점의 덜거덕 거리는 소리와 월남전에서 고막을 다쳐 목소리가 유난히 큰 퇴역해병의 음성이 나를 재촉한다. 가게를 열고 서로 인사를 나누는데 의당 보여야 할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에 장꾼이 타고 온 짐차가 버티고 있다. 무슨 영문인가 했더니 묘목장수는 무슨 사정으로 노점상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어 가지고 있던 물건을 덤핑으로 털고, 신앙심 두터운 과일장수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기 위해 장을 쉬고 교회를 가고, 오는 날로 불미스런 일을 당한 그릇장수는 정나미가 떨어져서 못 온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묘목장수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그렇게 장사를 그만 둘 거라면 차라리 다른 사람이나 잘하게 두지 그런다고 비난의 말이 나오자 다른 사람이 거들고 나섰다. 평소에도 너그러운 구석이라곤 조금도 없고 자기밖에 모른다고, 그런 사람은 어딜 가나 그렇게밖에 못 산다며 이런저런 비난이 실타래처럼 풀려나왔다.

사람의 삶은 어찌 보면 관계의 연속이다. 사람과 사람의 핏줄처럼 연결된 관계 속에 좋은 사람과도 만나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과도 만나게 된다. 좋은 사람과는 친밀하게 지내고 싫은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배척할 수도 없는 게 사람살이고 보니 그것만으로도 인생을 일컬어 고해라 하기에 충분하다. 만약에 그 날 묘목장수가 속이 상하기는 해도 조금 손해 보자는 마음으로 그냥 못 이기는 체 사과를 받아들이고 같이 좋은 낯으로 지냈으면 이런 뒷얘기가 나왔을까 하며, 앞으로 두 사람은 어떤 관계로 만나게 될까 하는 생각에 텅 빈 자리를 보면서 커피잔이 식은 뒤에도 유난히 씁쓸한 커피 맛이 입안에 머물고 있다.

할머니 한 분이 가게 문을 힘들게 열고 들어오셔서 커다란 봉지를 내려놓으시더니 상추를 사라고 하신다. 그냥 이천원만 달라고 하시며 땀을 닦으시는 할머니 손에 냉장고에 넣어둔 음료 한 병과 삼천원을 쥐어 드리고 냉장고 문을 열고 서니 머리가 복잡해진다. 상추가 비닐봉투마다 한 가득인데 이걸 또 언제 나누어 주고 다니나.

 







배너
배너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