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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환상의 옷을 벗지 못하는 일본

 

오랜 만에 이어령 선생의 에세이집 『지성채집(知性採集)』을 펼치니 <환상의 옷을 입은 일본론>이라는 글이 눈에 들어온다.

일본 동경대학 교수 도이다 케로우(土居健郞)의 롱셀러 『아마에(甘え)의 구조』를 보면 “일본인 심리에 특이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일본어의 특이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진단한다.

일본어에 ‘아마에(甘え)’라는 말이 있다. 어느 날 도이 교수는 일본어에 능통한 영국 부인과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 부인은 영어로 얘기하고 있었는데 환자인 자기 자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일본어로 ‘아마에(甘え)’가 들어간 말을 하였다. 왜 그 말만 일본어로 했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이러했다.

“영어에는 그와 같은 말이 없기 때문이다.” 도이 교수는 이 말에 무릎을 쳤다. 이것이 ‘아마에’가 일본에만 있는 독특한 어휘라는 확신을 갖게 된 근거이다. 영어에 없으니까 곧 일본어에만 있는 것이라는 엉뚱한 논리는 영어와 서양을 세계의 전부로 생각하는 일본인의 환각 증세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이어령 교수는 말한다.

『아마에(甘え)의 구조』처럼 일본인들이 써온 일본, 일본인론에는 일본의 특성을 영미(英美)와의 단순비교를 통해서 고찰한 것이 많다고 한다. ‘아마에’가 일본 특유의 말인가를 따지기에 앞서 서구의 언어보다 먼저 일본어와 유사성이 대단히 많은 한국어와, 일본문화의 원류라 할 수 있는 중국어부터 고찰해 보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다.

실상 ‘아마에’보다 더 세분화된 한국어가 있다. ‘어리광’, ‘응석’이라는 정감어린 말이다. 이 말은 한자어나 외래어가 아닌 토착 한국어이다. ‘아마에’는 일본보다 한국인의 정신구조와 보다 깊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일본은 매사를 서구와 비교하는 고약한(?)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는 연원이 깊다.

일본에서는 진보적이라지만 모순으로 가득 찬 논리를 전개했던 후쿠자와 유기치(福澤諭吉)의 ‘아시아에서 벗어나’라는 이른바 탈아론(脫亞論)이 그것이다. 후쿠자와는 1885년 3월16일 자신이 창간한 《지지신보》사설을 통해 200자 원고지 10장 안팎의 제국주의적 발상을 전개하니 이것이 탈아론의 전부이다.

결론은 이러하다. “오히려 그 대열에서 벗어나 서양과 진퇴를 같이하여 중국·조선을 접수해야 한다. 접수 방법도 인접 국가라는 이유만으로 사정을 헤아려 줄 수 없으며 반드시 서양인이 접하는 풍에 따라 처분해야 한다.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아시아 동방의 나쁜 친구를 사절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후 군국주의가 발호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문제는 100년이 훨씬 지난 이 시점에도 일본은 이 사고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한국과 중국을 그리도 괴롭혔던 식민지배와 못된 만행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없이 미국만을 상대하려하고 있다.

9월26일 미국을 방문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중국위협론’을 거론하면서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 하면서 자신을 ‘우익 군국주의자’로 부르고 싶다면 그렇게 부르라고 말하였다.

같은 날 유엔총회 연설에서는 성폭력 피해를 당한 여성에 대해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면서 여성 인권문제를 강조하기까지 하였다. 한국, 중국 등 종군위안부 피해자 문제에는 애써 눈을 감으면서 세계의 여성 인권문제를 거론하니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이 이처럼 한국과 중국이라는 인접국과의 관계 개선은 외면하면서 세계를 상대하려는 것은 800년때 후쿠자의 탈아론 논리와 다름이 없다.

벌거벗은 임금님과 일본은 언제쯤 환상의 옷을 벗고 현실을 직시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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