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청 앞 500년 수령의 느티나무도 서서히 누런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토요일 아침 옥상에 올라 멀리 연인산 명지산 화악산 등 높은 영봉이 이어져 있는 북쪽하늘을 바라다보니 쪽빛하늘에 뭉게구름 몇점 떠간다. 참으로 한가하고 청명한 가평의 하늘이다. 선인들은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했지만 이런 날은 서늘한 바람과 시원한 계곡물 벗 삼아 산책을 하거나 등산을 하고픈 마음이 굴뚝같다. 이런 계절적 특성 때문에 가을이 여름이나 겨울보다 독서하기에 더 장애가 많은 듯하다. 운동이나 등산이 몸의 양식이라면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 했던가.
나들이 하고픈 마음을 꾹 참고 옥상에서 내려와 마음의 양식을 택한다. 책상 앞에 앉아 이 가을에 무슨 책을 읽을까 궁리하다가 마음의 양식이라면 역시 톨스토이 작품이 아닌가 생각한다. 중학교 시절 읽었던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와 <부활>을 다시 꺼내든다. 특별히 톨스토이를 택한 이유는 50대 장년으로서 삶을 한번 되돌아보고 새로운 좌표를 찾아 나의 행로가 삐뚤어져 있다면 나의 길을 바로잡고 싶어서이다. 읽었던 책이지만 기억이 희미하다. 여자주인공 나타샤나 카츄사가 어느 작품에 나왔는지도 헷갈리고 남자주인공들의 이름도 아물아물하다. 줄거리도 대충 기억이 나지만 정확하지도 않다. 그래서 이제 정독을 했다.
<부활>은 <전쟁과 평화>보다 구성이나 등장인물이 단순하다. 남자주인공 네플류도프와 하녀 카츄사의 사랑이 테마이고 그 외에도 불합리한 사법제도와 토지제도의 개혁, 귀족사회부패의 척결, 농촌계몽, 사회개혁 등 계몽주의와 휴머니즘이 바닥에 깔려 있다. 요즘 유행하는 갑과 을의 관계에서 보면 갑의 위치인 귀족 네플류도프가 을인 하녀 카츄사를 마음대로 사랑하고 마음대로 버린 뒤 속죄하고 용서를 구하는 이야기이다. 상당부문 법정소설이다. 어느 날 법정에서 배심원으로 나온 네플류도프는 범죄자로 법정에선 카츄사와 조우한다. 참으로 오랜만의 만남이다. 청년시절 하녀였던 카츄사를 하룻밤의 여자로 간주하고 그녀의 순결을 짓밟고 약간의 돈을 집어주고 떠나버린 후 첫 만남이다. 그녀는 그 일로 임신을 했고 주인집에서 쫓겨난 후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타락해 범죄에 연관돼 살인과 절도 혐의까지 뒤집어쓰고 지금 재판을 받게된 것이다. 네플류도프는 그녀가 타락한 것은 자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카츄사를 구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심지어 그녀와 결혼까지 하겠다며 구혼을 한다. 남자주인공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찬바람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설원의 시베리아로 죄인으로 낙인찍혀 유배 간 카츄사를 따라가 반성하고 용서를 빈다. 또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고 단죄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오직 신만이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인간의 구원도 신의 영역으로 남겨둔다.
이 가을 부활에서 잊을 수 없는 장면은 역시 카츄사가 네플루도프가 기차를 타고 마을 앞 역을 통과하여 페테르부르크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얼굴만이라도 한번 보기위해 그의 아이를 임신한 몸으로 기차역으로 뛰어가는 장면이다. 카츄사는 여주인이 잠든 후에 헌 구두를 신고 머릿수건으로 머리를 감싸고 치맛자락을 걷어 올리고 역으로 달려갔다. 비바람이 불어 닥치는 깜깜한 가을밤이었다. 굵은 빗방울이 후드득거리다 멈추곤 하였다. 들판과 숲길은 발밑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으며 카츄사는 알고 있는 길인데도 숲속에서 길을 잃고 헤맸다.
그래서 기차가 3분밖에 정차하지 않는 마을의 작은 역에 도착한 것을 출발을 알리는 두 번째 벨이 울렸을 때였다(중략). 가까스로 플랫폼에 도착하여 1등석에 장교복을 입고 앉아있는 그를 발견하고 급히 창문을 두드렸다. 그때 마지막 벨이 울리고 기차가 떠나갔다. 기차가 속도를 가했다. 그의 얼굴을 보기위해 떠나가는 기차를 따라 잡으려고 종종걸음으로 달렸지만 허사였다. 떠나가는 기차를 바라보며 카츄사는 홀로남았다. 그리고 그녀는 버림받고 타락의 나락으로 빠진다. 이 가을 깊은 페이소스를 주는 대목이다. 가을의 우수에는 톨스토이가 제격인 듯하다. 가련한 카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