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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노래 하는데 나이는 상관 없어요”

싱글 음반 ‘첫사랑’ 발표한 최백호

 

지난 몇 년간 가수로 다양한 시도
‘그집 앞’ 연상되는 가곡 풍 담아

한 자리 머무르기 싫어 항상 도전
내년 영화감독 도전할 계획 밝혀

“첫사랑을 노래하는데 나이는 전혀 관계없어요. 늙은 노래, 젊은 노래가 없듯이 음악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니까요.”

‘낭만 가객’인 싱어송라이터 최백호(63)가 환갑이 넘은 나이에 애틋한 첫사랑을 고백했다. 최근 발표한 싱글 음반 ‘첫사랑’에서다.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그는 “마누라와 30년 살다 보니 탈출해야겠는데, 지금 바람은 날 수 없으니 첫사랑이나 생각하자는 것”이라며 농담부터 건넸다.

자작곡인 ‘첫사랑’은 ‘그집 앞’을 연상시키는 가곡 풍의 멜로디에 ‘아쉬워 작은 가슴 어째지 못해 아팠던, 이제는 멀어진 세월 그리운 첫사랑~’이란 시구(詩句) 같은 노랫말이 담겼다.

부산 기장군 좌천 출신인 그는 딱히 가수가 되겠다는 꿈이 없었다. 군에서 건강상의 문제로 제대하고 삶이 막막하던 시절, 친한 친구의 매형이 운영하는 부산 서면의 라이브 클럽에서 노래했고 1주일 만에 윤시내의 ‘열애’를 작사한 배경모 씨에게 스카우트된 계기로 지금에 이른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1977년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로 데뷔한 이래 36년을 가수로 살았다.

“90%의 운과 10%의 태평스러움 덕”이라고 했지만 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은 그의 왕성한 활동을 보면 겸손일 뿐이다.

그는 새 앨범을 꾸준히 내면서도 6년 넘게 라디오를 진행했고 갑자기 화가로 변신해 그림 전시회도 열었다. 2009년에는 연기 도전도 화제가 됐다.

 

그는 “새로운 일에 대한 흥미가 많다”며 “한 자리에 머무르는 타입이 아니다. 복이 많아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삶 자체가 역마살이 강해 한 가지를 꾸준히 못 한다”고 웃었다.

말 그대로 지난 몇 년간 최백호는 가수로서 다양한 시도를 했다. 지난해 10월 기타리스트 박주원 등의 후배들과 작업한 월드뮤직 앨범 ‘다시 길 위에서’를 냈고 올해는 아이유, 에코브릿지의 앨범에도 목소리를 보탰다.

이처럼 후배들과 접점이 있는 중견 가수들은 꽤 있지만, 그보다 윗세대 선배를 챙기는 가수는 드물다. 그는 ㈔한국음악발전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최근 1960년대를 풍미한 한명숙, 안다성, 명국환의 신곡 앨범을 기획했다. 이들이 신곡을 낸 건 50년 만이다.

그는 올해 조용필의 ‘바운스’가 울려 퍼지는 등 중견 가수들의 활약이 반가웠다고 했다. 앨범의 히트보다 만드는 과정의 마음이 중요하기에 60대 뮤지션도 앨범을 꾸준히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송창식 형님을 만날 때마다 새 앨범을 내라고 한다”며 “형님이 만들어둔 노래가 1천 곡이 있다는데 차라리 우릴 주던지…. 그런 형님이 있어야 후배들의 공간도 넓어지고 새로운 움직임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훌쩍 떠나고 싶다고 했지만, 그는 아직 할 일이 많아 보였다.

오는 20∼21일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송창식, 이장희, 한영애와 함께 ‘낭만콘서트 사인사색(四人思色)’ 공연을 앞두고 있다. 히트곡이 몇 곡 없다며 ‘낭만에 대하여’, ‘입영전야’, ‘영일만 친구’, ‘열애’ 등을 노래할 생각이란다.

그는 내년 영화감독에 도전할 계획도 공개했다.

“10년 전에 영화를 만들려다가 실패했어요. 배우도 캐스팅했는데 사기를 당해 돈만 날리고 촬영도 못 했죠. 내년에는 제작을 위한 여러 조건이 익어가니 도전해보려고요. 과거 드라마에 출연한 것도 제작 현장을 배우기 위해서였죠. 시나리오 제목은 ‘미사리’인데 그곳에서 노래하는 무명 가수의 슬픈 얘기입니다.”

예술의 경계를 넘어 유영할 수 있었던 건 음악인의 낭만을 누린 덕이다.

그는 “음악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라며 “음악의 낭만 안에서 자유롭게 살았다. 서두르지 않았고 1등보다 3등의 자리가 좋았다. 가수로 어려워지면 매달리지 않고 다른 곳을 찾았다. 그래서 지금의 내 길 위에 서 있다”고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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