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가운데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오키나와로 끌려와 희생된
한국인을 추모하기 위해 오키나와에 세워진 한국인 위령탑을
국내 한 민간단체가 제주도로
이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위령탑을 관리해온
오키나와 대한민국민단과 교민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오키나와 현지에 기자를 파견해
한국인 위령탑 건립 배경과 위령탑을 둘러싼 양 측의 주장을 취재했다.
15일 외교부와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오키나와현지방본부, 렛츠피스 등에 따르면 일본 오키나와 마부니에 있는 한국인위령탑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강제 동원됐다가 희생된 1만여명의 조선학도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1975년 8월 14일 세워졌다.
지난 2006년 3월 말 외교통상부가 일반에 공개한 ‘오키나와 한국인 위령탑’ 관련 외교문서에는 1974년 북한이 위령탑 건설을 기도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한국 정부가 먼저 위령탑을 세우기 위한 작업에 착수해 발 빠른 움직임을 보여 온 것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정부의 발 빠른 움직임으로 건립된 위령탑은 전국 각지에서 화강암과 옥돌 등으로 모아 분묘 형태로 만들어졌으며 그 앞에는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이 새겨진 비석이 세워졌다.
이 과정에서 오키나와 거주 교포들은 십시일반으로 성금을 모금해 위령탑이 세워진 곳과 주변 땅 2천115.7㎡(640평)를 사들여 1978년 대한민국 정부에 기부했고, 현재 일본 등기부등본상 위령탑 주변 토지는 한국 정부의 소유로 되어 있다.
그러나 최근 한·일 양국의 정치·경제·문화예술인 등 각 50명으로 구성된 ‘렛츠피스 한일공동기구’라는 민간단체가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에 제주국제평화공원에 한국인 위령탑을 이전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민단과 교민들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자신들이 민간 평화기구라고 밝힌 ‘렛츠피스’ 측은 1974년 당시 정부가 움직이기 전 오키나와 전투에서 일본학도병 지휘관으로 참전했던 일본인 생존자 후지키 쇼겐(90) 씨가 조선학도병 유골을 수습하고, 일본 프로레슬러로 활동하다 1963년 숨진 역도산 씨와 함께 12년간 모금활동을 전개해 한국인 위령탑을 주도해 세웠다는 자료를 제시, 그의 뜻에 따라 위령탑을 옮기려고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달 3일 제주도에서 ‘렛츠피스 한일공동기구 추진위원회’ 출범식을 갖고 오키나와 한국인 위령탑 이전을 위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이같은 사실을 알게 된 민단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민단 측은 “정부 소유의 재산을 민간단체가 좌지우지 할 수 있냐”는 입장과 함께 ‘렛츠피스’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사실 무근이며, 외교문서에 나온 ‘오키나와 한국인 위령탑’ 건립 내용이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민단은 렛츠피스가 제시한 자료를 일본과 한국에 있는 일부 언론기관에서 받아 ‘위령탑이 제주도로 이전된다’는 내용의 기사를 다루면서 오키나와현 주민들까지 한국 정부가 나서 이전이 기정사실화되는 거 아니냐는 오해까지 빚어지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민단은 ‘렛츠피스’ 관련 기사를 게재한 일본과 한국 언론사 측에 항의했으며, 기사를 다룬 일본 언론사는 민단의 주장을 받아들여 반박기사까지 게재한 상태다.
김미경 민단 오키나와현지방본부 사무국장은 “대한민국 소유인 위령탑을 개인이나 단체가 옮긴다, 만다 하는 것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순수한 추도차원이라면 굳이 옮길 것이 아니라 제주도에 모형을 세우면 되지 않냐”며 “국익을 위해서라도 섣불리 행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전영선 렛츠피스 사무총장은 “위령탑 이전 방법은 양 단체 간 논의와 협의를 거치면 되지만, 순수한 의도를 갖고 한 일본인이 말한 증언까지 과대망상으로 치부하는 것이야말로 역사왜곡 아닌가”라며 “역사 바로알기 차원에서라도 후지키 쇼겐 씨의 증언을 알리는 데 힘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외교부 재외동포과 관계자는 “렛츠피스 측에서 접촉해 와 위령탑 이전 문제를 논의한 적이 있다”며 “외교부는 민단이 관리하는 위령탑 공원이 정부 소유이기 때문에 허가 없이 옮기는 건 아니라는 공식입장을 전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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