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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 인생’ 10년 만에 꽃 피우다

연길시 조양천진 삼성촌 장경룡 씨 ‘연분홍 꽃망울 꿈’
일본 오카야마 농업대학 류학
고향마을에 진달래 없어결심
시행착오 끝에 2만5천주 재배

 

연길시 조양천진 삼성촌에 위치한 진달래재배밭, 꽃은 이미 졌지만 여전히 푸르디 푸른 잎사귀들이 봄바람에 살랑인다. 진달래밭사이로 한 사나이의 모습이 보인다. 진달래사나이 장경룡(52살)씨이다.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진달래나무가 푸릇하게 잎사귀를 번져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입가에는 어느새 흐뭇한 미소가 어리여있다.

유년시절을 시골에서 보낸이라면 진달래꽃 만발한 봄날의 산과 들이 곧 놀이터였다. 훈춘시 반석향 호룡촌이 고향인 장경룡씨에게도 진달래꽃을 한아름 꺾어 좋아하던이에게 고백하던 가슴 한가득 설레임이 그대로 고스란히 추억이 되였다.

참으로 해맑게 웃으며 "진달래에 인생을 건 남자입니다"라며 투박한 손을 내민다.

10여년만에 진달래재배에 성공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장경룡씨는 연변대학 농학원 농학과를 졸업하고 연변제1고급중학교에서 생물을 가르치다 1992년에 연변주초원관리소로 근무지를 옮겼다. 산과 들에 묻혀살며 “최고의 초원기술일군이 되리라”던 어린시절의 꿈을 위해서였다.

당시만 해도 원림에 대한 서적이 적었던 때라 연구에 목마른 그는 1999년 홀연 일본 오카야마 농업대학 류학을 결정하게 된다. 류학시절에도 그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면 바로 자전거 한대에 몸을 실은채 원예시장을 샅샅이 누비고 다니며 식물습성과 재배법을 연구했다.

그런 그가 진달래재배를 결심하게 된건 지난 2002년 어느 봄날, 귀국후 처음으로 찾은 고향마을 산기슭에 봄이면 어김없이 피여나곤 하던 그 많던 진달래꽃이 자취를 감춰버린것을 보고나서였다. 알고보니 산에 핀 진달래꽃을 파다 길거리 미화용과 아빠트단지내 정원 관상용으로 옮겨심은터였다.

“옮겨심은 진달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2, 3 년이면 바로 죽습니다. 요즘 주위 산들을 둘러보면 진달래가 많지 않습니다. 어린시절 추억을 송두리채 빼앗긴것 같아 가슴이 아픕니다.”

장경룡씨의 가슴 한가운데 짙은 여운으로 살아있던 진달래꽃이였다. 문득 진달래를 재배해 쉽게 꽃을 얻을수 있다면 사람들이 더이상 산의 진달래를 파오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이 들더란다. 그래서 무작정 대부금까지 맡아 조양천진 삼성촌에 3000여평방메터되는 땅까지 사들였다.

바로 오토바이를 타고 주내 산들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진달래꽃이 핀 곳에는 표식을 해두었다. 가을에 씨앗을 채집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정작 가을이 되면 아무리 표식을 해두었더라도 수풀이 무성한데다 꽃이 피였다고 꼭 씨앗이 맺히는게 아니여서 하루종일 산을 헤매고 다녀도 채집한 씨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나마 채집할수 있는 시간도 10여일 정도밖에 안돼 비가 와도 채집을 멈출수가 없었다. 가져간 주먹밥으로 점심을 대충 때우고 진달래를 찾아 산꼭대기까지 올라갔다 발을 헛디디여 하마트면 큰 사고를 당할번한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한번은 삼도만의 한 산속에 들어갔다 곰에게 쫓겨 겨우 목숨을 건진적도 있었다.

“크고 작은 산을 안 다닌 곳이 없습니다. 미치지 않으면 그러지 못할거예요.” 그가 하는 말이다.

진달래재배는 긴 시간이 소요되고 기술적 어려움이 많아 그야말로 힘든 고행의 길이였다. 재배초기에 줄줄이 실패를 맛봐야 했다. 어렵게 구한 씨를 땅에 심고 이제나저제나 새싹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2년 동안 겨우 한뼘꼴로 자라더란다. 게다가 갑작스레 바뀐 생태환경에 대부분 시들고 얼마 안남은거라도 살리려고 바로 영양단지에 옮겼지만 그나마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어갔다.

2년 동안 온갖 심혈을 다 기울인것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돌아가자 설음이 북받쳤다. 까맣게 죽어버린 자식같은 진달래를 쳐다보노라니 저도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여기서 그만둘수는 없었다. 꽃에 대한 열정을 버릴수가 없었던것이다. 오기가 생겨 이것저것 자료를 찾아가며 진달래와 씨름을 했다. 그리고 재배를 시작해서 6년째 되던 해에 드디여 그의 진달래밭은 온통 연분홍꽃으로 뒤덮였다. 그 희열도 잠시, 진달래재배로 성공했다고 자신있게 얘기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이미 수년째 적응된 환경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심은후 최소 4년은 죽지 말아야 비로소 재배에 성공했다고 할수 있기때문이였다.

얼마전 8~10년생 진달래 2만 5000여주가 봄을 맞아 연분홍 꽃망울을 터쳤다. 새로운 환경으로 옮겨진지 만 5년이 지난후였다. 재배종사 10여년만에 일궈낸 성공이였다.

“재배 10여년만에 비로소 진달래에 대해서 어섯눈을 뜨고있습니다. 참으로 묘한 꽃입니다.”

그의 말대로 진달래농사는 단순한 재배가 아니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세밀하게 살펴야 되는 일이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바람이 불어도…./글·사진 신연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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