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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날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

돌아온 R&B의 황태자 휘성
매일 10시간씩 노래 연습 ‘자수성가형 가수’
2002년 ‘안되나요’로 데뷔, 수많은 히트곡 탄생
윤하·아이비 등 음반 참여해 작사·작곡가 변신
제대 후 과거 명곡 재조명

 

7년 전 인터뷰에서 휘성(32)은 음악을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다른 재주가 없어요. 저를 가장 돋보이게 하고 떳떳하게 만드는 게 음악이죠. 가족을 먹여 살리기도 하고요.”

국내 알앤비(R&B) 장르의 선두 주자인 휘성은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가수다.

타고난 보컬이 아닌데다가 육체적으로도 알레르기성 비염에 축농증, 스트레스를 받으면 도지는 과민성 대장증후군에 불면증과 우울증 등 걸출한 스타로 성장하기에 난관이 많았다.

가정 형편도 마음 편히 음악 할 환경은 못됐다. 서울 면목동 단칸방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집안에 안 좋은 일이 겹치며 고교 때는 대학 등록금조차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게다가 ‘남 못지않게’ 무명 시절도 겪었다.

그는 고3 때인 1999년 4인조 그룹 A4로 데뷔했다. 하지만 이 팀은 2집까지 낸 후 2000년 해체됐다. 그는 팀을 나오고서 죽도록 노래하는 연습벌레가 됐다. 보컬 학원에 등록해 6개월간 매일 10시간씩 화장실 가는 시간만 빼고 노래했다.

이후 2000년 강변가요제에 출전했는데 이때 심사위원이던 가수 이상우가 휘성을 자신의 기획사 연습생으로 발탁했다.

1년 후 그는 그곳에서 만난 프로듀서 박경진과 나와 솔로 데뷔를 준비했다. 박경진은 기획사 엠보트를 만들어 휘성의 데모 CD를 돌렸는데 그의 가능성을 알아본 YG엔터테인먼트가 공동 제작에 참여했다.

휘성이란 이름을 세상에 처음 알린 솔로 데뷔곡 ‘안되나요’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도 불구하고 노래가 터졌다. 같은 해 솔로 데뷔를 한 비와 신인상도 나눠가졌다.

어려움을 극복하며 돌고 돌아 성공한 케이스인 셈이다.

최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휘성은 “난 자제력이 강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하고 싶은 걸 못하면 당장에라도 죽을 것 같았다. 나에겐 그게 음악이었다”고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이후 2집의 ‘위드 미’(2003), 3집의 ‘불치병’(2004), 4집의 ‘굿바이 러브’(2005)까지 잇달아 터졌다. 이 곡들을 쓴 작곡가 김도훈과 콤비를 이뤘는데 4집은 발매 한 주 만에 12만 장이 판매됐다. 수려한 테크닉보다 가사를 잘 전달하는 창법은 큰 장점이었다.

2006년 봄 그는 작곡가 박근태가 운영하는 오렌지쇼크로 이적했다. 이때부터 그는 슬픈 알앤비를 넘어 솔(Soul), 슬로 잼, 네오-솔 등 장르의 폭을 넓혔고 프로듀서로서의 역량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5집의 ‘사랑은 맛있다♡’(2007)에선 랩을 시도했고 ‘별이 지다’가 담긴 6집의 첫 번째 미니앨범(2008)에선 자작곡을 수록하며 흑인 음악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두 장의 앨범은 전작에 비해 만족스러운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그는 “‘별이 지다’를 끝으로 ‘가수 생활을 접을까’ 진지하게 고민했다”며 “이어서 낸 ‘인섬니아’(2009)를 마지막으로 프로듀서로 전향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노래가 정말 큰 사랑을 받았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이즈음 다른 가수들의 음반에 참여하며 작사·작곡가로 빛을 발했다. 윤하의 ‘비밀번호 486’, 아이비의 ‘유혹의 소나타’, 이효리의 ‘헤이 미스터 빅’ 등의 가사를 썼다. 섬세하면서도 직설적이고 재치있는 노랫말이 강점이었다.

작사를 시작으로 작곡가로도 폭을 넓혀 올해만 엠블랙의 ‘남자답게’, 에일리의 ‘노래가 늘었어’, 임창정의 ‘마지막 악수’ 등을 만들었다. 현재 에일리의 음반 프로듀서로도 주목받고 있다.

2009년 박근태와 결별한 그는 ‘결혼까지 생각했어’(2010), ‘가슴 시린 이야기’(2011) 등을 다시 히트시킨 뒤 2011년 입대했다.

제대 몇 개월 뒤 KBS 2TV ‘불후의 명곡’과 JTBC ‘히든 싱어’에 출연하며 그의 과거 명곡들이 재조명 받는 행운이 따랐다. 멜론, 엠넷닷컴 등 각종차트 100위권에 10여 년 전 곡인 ‘안되나요’를 비롯해 대표곡 10여 곡이 진입하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이런 반향에 힘을 얻었지만 제대 후 처음 선보일 앨범에 대한 부담은 되레 커졌다.

그는 이번 앨범에서 정기고, 프라이머리의 음악처럼 부담없이 들을 수 있는 스타일리시한 음악을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말동무가 되는 음악”이라며 “그러나 타이틀곡이 아쉬웠고 결국 이 부분을 어필하진 못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그는 데뷔 이래 처음으로 새로운 영역에 도전한다. 다음 달 충무아트홀에서 막이 오르는 뮤지컬 ‘조로’에서 조로 역을 맡았다. 과제가 주어지면 한 가지에 몰두하는 성격답게 지금은 밤낮으로 이 작품에만 매달려 있다고 한다. 하반기에 선보일 음반 작업도 해놨다.

가수 휘성으로는 성공한 삶인지 물었다.

“전 성공했다기보다 열등감, 자격지심, 호기심, 모험심 덕에 살아남았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 하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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