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박물관이 문화가 있는 날을 기념해 ‘이달의 유물’로 ‘황수신 청화백자묘지’를 최초로 공개, 오는 28일까지 2층 상설전시실 입구에서 특별 전시한다.
1467년(세조 13년)에 청화백자로 제조된 황수신(黃守身, 1407∼1467) 묘지(墓誌)는 지금까지 알려진 청화백자묘지 가운데 두 번째로 연대가 빠른 귀중한 유물로, 조선전기 제천의례(祭天儀禮)와 한국도자사 연구에서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갖는다.
황수신은 조선 초기에 명재상으로 알려진 황희(黃喜)의 아들로, 아버지에 이어 영의정이 됨으로써 장수 황 씨의 명성을 떨쳤다.
황수신의 자는 수효(秀孝, ‘세조실록’에는 季孝로 돼 있음), 호는 나부(懶夫, ‘세조실록’에는 懦夫)다. ‘나부’는 ‘청렴하고 지조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는 열일곱 살 때 사마시(司馬試)를 보다가 시험감독관에게 욕을 당하고 분한 마음에 “백성에 은혜를 미치고 세상을 건짐이 과거라야만 한다더냐? 평생에 썩은 선비가 되기는 싫다”며 붓을 던지고 시험장을 나왔다고 한다.
묘지는 모두 4장으로 돼 있으며, 황수신의 생애는 1~3장에 실려 있고 마지막 한 장에는 아무런 내용이 없다. 원래 4장 정도의 분량을 계획하고 준비했지만, 작은 글씨로 쓰다 보니 3번째 장의 반 정도만 채우게 되자 그대로 마무리하고, 내용이 없는 마지막 장도 함께 구워 무덤에 묻은 것으로 추측된다.
묘지에는 대여섯 살 때 우물에 빠진 친구를 구한 아들을 보고 재상의 재목으로 생각했다는 아버지의 기억, 열 살 무렵 태조 이성계의 두 번째 왕후이자 세조의 할머니인 강씨(태종 이방원의 어머니)를 모신 흥천사(興天寺)에서 수양대군을 만나 훗날 크게 등용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 어머니 상을 당한 홍수신을 위문하기 위해 수양대군이 여러 차례에 걸쳐 상가를 직접 조문했다는 이야기 등이 실려 있다.
묘지명을 지은 사람은 세종의 처조카이자 문장가로 잘 알려진 강희맹(姜希孟, 1424∼1483)으로, 황수신과 친밀한 관계였던 강석덕(姜碩德, 1395∼1459)의 아들이자, 황수신의 아들인 황신의 처남이었다.
박물관 관계자는 “이 유물은 조선 전기에 청화백자가 사용된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 특히 분원 성립 초기의 백자 생산 양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설명했다.(문의: 031-288-5373)
/김장선기자 kjs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