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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 산책]이름뒤에 숨은 것들

이름뒤에 숨은 것들

                                                /최광임

그러므로 너와의 만남에는

목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헤어짐에도 제목이 없다

오다가다 만난 것들끼리는

오던 길 가던 길로

그냥 가면 된다, 그래야만 비로소

너와 나 들꽃이 되는 것이다

달이 부푼 가을 들판을

가로질러 가면

구절초밭 꽃잎들 제 스스로 삭이는 밤은 또 얼마나 깊은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서로 묻지 않으며

다만 그곳에 났으므로

그곳에 있을 뿐, 다행이다

내가 한 계절 끝머리에

핀 꽃이었다면

너 또한 그 모퉁이에 핀 꽃이었거늘

그러므로 제목없음은 다행한 일이다

사람만이 제목을 붙이고

제목을 쓰고, 죽음 직전까지

제목 안에서 필사적이다

꽃은 달이 기우는 이유를 묻지 않고

달은 꽃이 지는 뜻을

헤아리지 않는다, 만약

인간의 제목들처럼

집요하였더라면 지금쯤

이 밤이 휘영청

서러운 까닭을 알겠는가

꽃대궁마다 꽃피고 꽃지고,

수런수런

밤을 건너는 지금

-최광임시집 『도요새 요리』(현대시시인선/북인, 2013)

 



 

이름은 ‘이르다’의 명사형이다. 즉 이름에는 이미 어디엔가 닿을 목적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만남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시인은 만남에도 헤어짐에도 어떤 목적이나 제목도 달지 않아야함을 노래한다. 하늘과 땅을 구분하지 않는 자연의 생명들에게 달이 기우는 것과 꽃이 지는 것에 이유를 달지 않는 것처럼 우리들도 제목에 갇혀 목적의 종이 되지 않아야 가장 자연스러운 생명이 된다는 것을, 그것이 바로 우주를 구분하지 않고 사는 가장 크고도 가장 작은 생명이 될 수 있음을 경전의 잠언처럼 깨닫게 된다. 이제 자신의 이름 뒤에 숨은 제목도 목적도 서서히 지워야 하겠다. 인생의 겨울이 닥치기 전에. /김윤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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