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대 그리스학과 교수이자, 한국-그리스협회 회장인 저자가 ‘그리스 신화Ⅰ: 올림포스 신들’에 이어 두번째로 펴낸 책으로, ‘인간이었지만 신의 반열에 오를 만큼 탁월한 영웅들’과 ‘주제넘게 신들을 넘보았던 제1세대 영웅들’의 이야기를 12장에 걸쳐 다뤘다.
저자는 혈연이나 지연, 혹은 우정과 악연으로 얽힌 영웅들의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무려 600개에 가까운 고유명사들과 그들의 관계를 역동적으로 담아냈다. 게다가 원래 공간적으로 배열돼 있던 그리스 신화를 독자들이 읽기 편하도록 시간적으로 재구성했다.
그는 “한 인물을 밝히는 데 하룻밤을 새워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고백할 만큼 그리스 신화 속 영웅들의 관계를 정리하면서 한 명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특히 올림포스 신들과 영웅들을 단순히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신화에 스며들어 있는 역사를 발굴함으로써 고대 그리스 세계의 신화가 발생·변모·소멸에 이르는 전 과정을 세밀하게 추적했다.
저자는 수십 년에 걸친 현지답사를 통해 신화를 주제로 한 고대 그리스인들의 회화와 조각 이미지 등을 적재적소에 곁들여 신화에 대한 이해와 흥미를 높였다.
그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올림포스 신앙이 그리스 땅으로 유입되기 전에 선주민들이 숭배하던 신들이었다고 설명한다.
크레타 섬의 선주민들이 숭배하던 황소머리에 하반신은 사람인 미노타우로스가 소년들과 소녀들을 잡아먹은 것은 올림포스 신앙이 들어오기 전에 크레타 섬에서 사람을 잡아 희생물로 바치던 인신공희(人身供犧)의 풍습을 상징한다. 크레타 섬을 발굴한 결과 실제로 인신공희의 증거가 나왔다고 한다.
저자는 신들을 시험하기 위해 자식을 잡아 바친 것으로 악명 높은 탄탈로스도 그리스 땅의 선주민들이 ‘새로 주도권을 잡은’ 올림포스 신앙의 숭배자들을 대접하기 위해 자신에게 가장 귀한 존재였던 아들을 잡아 바쳤다고 봤다.
하지만 선주민들의 ‘좋은 의도’는 새로운 권력자들에게 야만스럽고 혐오스런 것으로 받아들여져 혹독한 처벌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아테네 출신 테세우스가 크레타의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것은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인들이 크레타 섬의 미노아인들을 제압했음을 의미한다.
저자는 크노소스 폐허처럼 ‘아득한 옛날이 현실이 되고 신화와 전설이 역사가 되는’ 신화의 현장을 철저하게 답사함으로써 우리가 꼭 만나야 할 신화 속 주인공들을 생동감 있게 무대에 등장시킨다. 또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올림포스 신들과 영웅들에 대한 인류학적·종교학적·문학적 의미와 상징을 재미있게 풀어나간다.
저자는 글쓴이의 말을 통해 “이 책에는 진정한 영웅들과 함께 천박한 소영웅주의에 빠져 우매한 실수를 저지르는 사이비 영웅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런 천박한 인간들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며 “진정한 영웅들을 찾기 힘든 이 시절, 이 책이 우리 삶을 의미 있는 것으로 바꾸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장선기자 kjs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