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위스의 신학자이자 교육학자였던 오스카 피스터(Oskar Pfister)는 루브르에 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두 성녀와 아기예수’에서 불현듯 독수리 형상을 발견하게 된다. 마리아를 두르고 있는 푸른 치마가 독수리의 형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엉덩이를 감싸고 있는 부분이 독수리의 머리였고 마리아의 얼굴 쪽으로 향하고 있는 부분이 꽁지였다. 오스카 피스터는 1913년 ‘정상인의 암호, 암호 문서와 무의식적 그림 퀴즈’라는 글에서 그가 간파한 독수리 형상을 발표하였고 더불어 이 암호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에 대하여도 저술했다.
오스카 피스터는 종교인이면서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던 사람이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유럽에서 대두될 무렵, 대다수의 종교인들은 프로이트가 무신론자라는 이유외에도, 그전까지는 엄연히 영적인 영역이라고 여겨왔던 영혼의 치유를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내리려 했다는 이유로 프로이트에게 매우 큰 반발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자유로운 신앙관과 열린 사고를 지니고 있었던 오스카 피스터는 정신분석학과 신앙이 반드시 대립하는 것은 아니며, 둘 사이의 접점 지대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역시 오스카 피스터의 발견을 높이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들이 지닌 암호들의 해석에 골몰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유년의 기억’이라는 글은 1910년대에 쓰였고 꾸준히 다듬어지다가 1920년에 탈고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오스카 피스터의 독수리 발견이 각주에 실렸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프로이트가 쓴 이 글에도 독수리가 의미심장하게 등장하고 있었는데, 독수리의 등장은 레오나르도가 자신의 유년 시절에 대한 회고로부터 시작된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요람에 누워 있는데, 독수리 한 마리가 내게로 내려와 꽁지로 내 입을 열고는 여러 번 꽁지로 내 입술을 쳤다.’ 화자가 젖먹이 시절의 일을 기억한다는 것도 기이하지만, 독수리가 내려앉아 꽁지로 입술을 쳤다는 것은 현실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그리하여 프로이트는 이 기억이 의미하는 바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프로이트는 이 기억이 단지 레오나르도가 훗날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어른이 된 이후 얻은 기억들과는 달라서 어린 시절이 지나간 이후 발굴되어 변형되고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린 시절의 기억은 기억과 환상이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섞여 있게 된다고 말한다. 프로이트는 이를 역사 이전의 역사, 즉 기록 이전의 역사인 선사시대와 비유하였다. 기록 이전의 역사는 고대인들의 기억에 의존하고 있는데, 그 기억은 후대인들의 욕망으로 인해 변형된 신화로 남아있게 된다는 것이다.
아무튼 프로이트는 평소 새들에게 비상한 관심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방대하고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던 레오나르도가 이집트의 신화에서 전해지는 여신 뮤트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고 가정한다. 뮤트(Mut)는 독수리의 형상을 하고 있었고 고대 이집트인들이 모성의 상징으로 여긴 존재였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독수리에는 수컷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뮤트가 하늘 높이 올라간 상태에서 자궁을 열면 바람의 힘으로 수태를 한다고 여겼었다. 이 인물은 동정녀 마리아를 연상시키는 한편, 아버지 없이 어머니에게서 자란 레오나르도에게는 자신의 어머니를 연상시켰을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공증인이었던 세르 피에로 다 빈치와 농부의 딸이었던 카테리나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다섯 살까지 어머니하고만 자라다가 다섯 살이 된 해부터 아버지에 의해 양육되었던 것이다. 가장 없이 아이를 키웠던 카테리나는 아이에게 모든 애정과 열정을 쏟아 부었고, 그 애정은 이후 레오나르도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러므로 ‘독수리의 꽁지가 내 입술을 여러 번 쳤다’는 의미는 ‘어머니가 내 입술에 열정적인 키스를 퍼부었다.’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이 글을 통해 레오나르도의 유년 시절이 그를 동성애자로 이끌었다고 밝히고 있으며 그가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여러 단서들을 제공한다. 그중 한 가지로 또 다시 독수리가 언급된다. 독수리 꽁지를 지칭하는 ‘coda’는 이태리어로 남성의 성기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