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
/김다희
아버지 팔뚝에 힘 불끈거릴 때
그때 놓칠까 세상 밖 나온 나처럼
첫째도 꼴찌도 아닌 딱 중간의 나처럼
나팔꽃과 메꽃 사이에 낀
붉은 계절의 페이지를 넘기고 있다
내 생각의 밭에 누군가 부려 놓은 한 톨의 씨앗,
호기심이 넝쿨처럼 뻗어 갈 때
아무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지만
하늘과 땅 사이 점점 좁히고 있다
힐끗 돌아본 거기
하늘에도 허방이 있어
발을 잘못 디딘 새 한 마리 추락한다
- 시집 ‘봄의 시퀀스’(시로여는세상, 2014)에서
우리는 ‘사이에 낀’ 존재들입니다. 행복과 불행의 경계를 헤매기도 하고 선과 악을 넘나들기도 합니다. 산다는 것이 이처럼 어느 ‘틈’에서 나와 또 다른 ‘틈’으로 사라지는 것이라면 자못 허무할 따름입니다. 지금 시인은 욕망에 달뜬 시절을 다 보내고 이제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에 나옴직한 누님처럼 생의 한 페이지를 넘기려 하고 있습니다. 돌아보니 또 다시 허허롭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이카로스의 날개를 달고 비상했던 때가 있지 않았습니까? 나머지 세월은 절망의 틈을 비집고 나온 그 기억을 되살려 다시 한 번 또 다른 세계로 날아보자는 뜻을 품어봅니다. 우리 마음 속 날개가 있는 한 다시 비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민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