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불
/한영숙
때 아닌 늦장마로 운동꾼들이 휴식에 들어가자 신록은 모처럼 본색을 드러낸다.
웅크렸던 어깨를 활짝 펴고 속잎 부풀려 여기저기서 구애를 한다.
검은 늑골 사이로 가로등 불빛이 풋풋한 살 찧는 소리를 낸다.
한 바퀴 두 바퀴 그 빗속을 걷다보면 한잔 들이킨 낯익은 건장한 사내를 만난다.
늘 핫팬츠 차림이다.
모가지 길게 뺀 위엄서린 수탉 훼치는 울대를 꼭 빼닮은 뒤태의 근육이 어제처럼 뇌리에 스캔되고.
눈 코 입 가늠할 수 없지만 보폭이 재빠르게 바뀔 때마다 빗근이 불룩거린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질주하는 나는 반사적으로 옴찔한다.
그 옛날 습기에 강하다던 아리랑성냥불로 筋肉質에 확 그어댄다면
내 젖은 몸 한 벌 뒤틀리며 서서히 타오를 수 있을까!
대
학 1학년 철없던 새내기 시절에 친구 셋이서 야간열차를 타고 부산역전에 내린 적이 있다. 버스도 안다니는 이른 시각이라 딱히 어디 갈 곳도 없는 우리는 멈칫거리다 해장국을 파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해장국을 시키고 막 자리에 앉았을 때 기름때가 묻어있는 시커먼 작업복을 입은 두 남자가 들어섰다. 노동의 뒤 끝, 작업복 위로도 느껴지는 탄탄하게 뭉쳐진 한 젊은 남자의 근육! 둥그런 탁자를 앞에 두고 의자위에 버티고 앉은, 거만하기조차 한 그 낯선 남자의 생경한 모습에 우리는 서로 얼굴을 붉히며 괜히 당황스러웠다. 시적 화자도 빗물에 취한 풋풋한 세상 속을 걷다가 저마다 속내를 드러낸 풍경 속에 젖은 여름의 끝자락이 사방에서 불룩거림을 느낀다. 그 때 나타난 근육질의 건장한 사내! 그에게 잠시 이끌린다 해도 누가 뭐라지 않으리라. /송소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