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안양아트센터에서 열린 인형극 ‘상자’는 인형의 연기에 감정과 숨을 불어넣어 관객과 소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볼 수 있는 공연이었다.
한국계 캐나다인 입양인이 주인공인 공연은 ‘데이빗 미상 맥켄지’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미상’인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문제의식은 갖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공감하기 어려운 소재인 ‘입양’을 무대위로 끌어올린 예술무대 산은 이번 공연을 캐나다 극단 ‘팡케아 아츠’와 공동 제작해 입양문제를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각을 더했다.
중년이 된 데이빗이 자신의 뿌리를 찾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으며 시작되는 공연은 데이빗의 여정이 이어지는 가운데 과거를 회상하면서 입양아의 삶을 이야기한다.
상자에 담겨 캐나다 양부모집에 도착한 데이빗은 친자식처럼 자신을 아끼며 사랑을 쏟는 양부모님을 만나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내지만 한국인도 캐나다인도 아닌 자신을 향한 차가운 시선들에 상처를 받는다.
어린 시절부터 중년이 되기까지 데이빗의 삶 전체를 아우르는 공연은 입양아들이 겪어야 하는 차별을 현실적으로 묘사한다. 캐나다인에게는 수학을 잘하는 아시아인으로, 유학온 한국인들에게는 한국말을 못하는 캐나다인으로 불리는 데이빗은 “where are you from?”이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현실적인 내용이지만 인형극만이 가질 수 있는 동화적인 요소와 귀여운 캐릭터가 더해져 무겁지 않게 극을 이끈다. 데이빗이 한국에서의 어린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은 귀여운 손인형이 여럿 등장해 잠자리를 잡는 모습으로 아기자기함을 더했다.
데이빗을 제외한 등장인물들은 실제 배우들이 연기한다. 따라서 주변 인물들은 말을 하지만 데이빗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창백한 피부, 감은듯한 눈으로 묘사된 데이빗은 주눅들고 슬퍼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다. 말을 하지도 감정표현을 하지도 못하는 인형 데이빗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선택당할 수 밖에 없었던 입양아의 삶을 대변하고 있는 듯 했다.
공연의 막바지, 한국에 도착한 데이빗은 자신이 버려졌던 나무옆에 앉아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편지에 담아 읊어내려간다. 무대에 앉아 편지를 읽어내려가는 데이빗의 모습에서 인형이 아닌 실제 입양아 데이빗이 슬퍼하며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생명력이 느껴져 감동을 더했다.
‘상자’는 인형을 생명을 가진 인물로 재탄생시킨다는 예술무대 산의 철학이 고스란히 느껴지며 앞으로의 행보에 기대감을 갖게 한 공연이었다.
/민경화기자 m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