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플갱어
/이숙이
네가 누구냐……?
내가 알고 있던 평소 내가 아니다
무슨 근거로 거울을 믿을 수 있을까
내가 누구인지
대답도 없고 잡히지도 않는다
거울은 고집과 아집으로 굳어진 관념 덩어리
너의 진실은 어디 있는가?
어떤 논리가 거울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을까
세상 모든 것들이 내 안에 웅크리고 있다가
거대한 용트림을 한다
혹시 사악한 내면이 뿔 달린 악마로 나타나지 않을까
너의 그 잔혹한 법칙에 길들여진
무성한 핏발이 가지를 뻗어 파고 든다
내가 정말 나인지 내가 누구인지
혼절해버릴 것 같다
두렵다
아침저녁 매일 보는 또 다른 나를 난 믿지 않는다
나는 나이면서 내가 아니다
내가 바라는 내가 아니거든.
-이숙이 시집 ‘누가 시간 좀 빌려 주세요’
내가 모르는 내 안의 나를 볼 때가 있다. 평소의 내가 아닌 내가 내뱉는 말과 행동은 참 낯설다. 내 안에 무엇이 웅크리고 있었던 것인가. 우리는 살면서 참고 참아야 할 일이 많다. 그때마다 적절히 분출하지 못한 감정은 내 안에 층층이 쌓이는 찌꺼기로 남는다. 그것은 바른 생활을 추구하는 사람일수록 더 크게 느끼는 두려움이다. 언제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내가 나타날지 모를 거대한 용트림, 화자는 거울을 보고 묻는다. 내가 누구인지 대답도 없고 잡히지도 않는 나를 향해 고집과 아집으로 굳어진 관념 덩어리인 너의 진실은 어디 있는가? 어떤 논리가 거울의 결박을 증명할 수 있을까. 비록 뚜렷한 답이 없는 질문이지만 내가 아닌 나의 인식은 나를 단속하고 조금이나마 후회 없는 길을 갈 수 있게 하는 것이리라.
/서정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