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 아줌마
/김선희
순대 실은 용달차에 손님이 뜸할 때면
도마 위에 책을 펴는 필리핀 애기엄마
흐릿한 불빛 너머로 고향땅을 그린다
함지박에 쌓인 순대 뚜걱뚜걱 썰어 가며
어눌한 한국어로 건네는 인사말이
비탈길 바람을 몰아 골목 가득 따스하다
- 시조집 ‘숲에 관한 기억’/ 동학사·2015
이주민 백만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단일 민족을 내세우며 우리가 남인가를 외치는 일은 이제 유치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열린사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필리핀에서 온 순대 아줌마는 몸만 이 땅에 온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과거 우리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철학자 레비나스는 ‘타자(他者)’에 대해 지녀야할 윤리적 책임을 강조했습니다. 어렵지만 우리말로 인사를 건네는 이주민의 얼굴 속에서 우리가 읽어야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익숙한 ‘비탈길 바람’을 위무할 뿐만 아니라 ‘따스함’을 건네도록 성숙한 우리의 얼굴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이민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