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연설에 나선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 정권이 핵개발로는 생존할 수 없으며 체제 붕괴를 재촉할 뿐이라며, 스스로 변화할 수밖에 없도록 보다 강력한 조치들을 취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격렬하게 반응해온 북한붕괴론을 연상시키는 통첩성 발언이었다. 이제는 햇볕정책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도 흔적조차 남지 않는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특별한 전기가 없는 한, 한반도에는 일촉즉발의 군사적 위기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국제사회의 우려를 무시하고 장거리 로켓 발사를 강행한 북한에 대한 제재는 불가피하다. 그래서 이미 국제사회는 유엔 안보리를 통해 그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우리 정부는 개성공단 중단과 사드 한국 배치라는 사실상 독자적 제재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같은 극약 투여에 대한 우려와 논란도 적지 않다. 개성공단 중단의 경우 북한에 주는 타격보다, 우리 입주 기업들이 입게 되는 피해가 훨씬 크다는 점에서 자해적 조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개성공단에서 지급된 임금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사용되었다는 정부의 설명도 진위를 둘러싼 정치적 공방거리가 되어버렸다. 사드 배치 문제는 ‘결연한 반대’까지 하는 중국의 강력한 반발을 낳고 있다. 당장 중국의 경제적 보복이 시작될 경우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고, 자칫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대결 한복판에 우리가 끼어버리는 상황이 심각히 우려된다. 이 역시 북한이 입게 되는 타격보다 우리가 우려해야 할 피해가 더 큰 상황이다.
지금은 더 이상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도록 하는 위기관리의 리더십이 남북 모두에게 절실한 시점이다. 이대로 가면 한반도는 동북아의 화약고가 될 수밖에 없다. 거기에 누군가가 성냥불을 그어 던져 전쟁이라도 일어난다면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일 자체가 무의미한 폐허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지금 같은 때의 외교안보 정책은 살얼음 위를 걷듯이 조심스럽고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여러 가지가 불안해 보인다. 지난 1월에는 박 대통령이 갑자기 북한을 배제한 5자회담 제안을 했고, 중국 정부가 몇 시간 만에 이를 일축한 일이 있었다. 민감한 시기에 전혀 현실성 없는 제안을 대통령이 덜컥 내놓은 해프닝이 되고 말았다. 개성공단 전면중단은 청와대의 뜻에 따른 것이었고, 그에 의견을 달리했던 통일부의 판단은 배제되었다는 후문이다. 사드 배치 협의를 전격 결정한 배경에도 대북 제재와 관련해 중국이 보인 섭섭한 태도에 대한 박 대통령의 ‘화’가 크게 작용했다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 한 나라의 생존을 좌우하는 외교 안보 정책이 시스템이 아니라 대통령의 심기에 따라 좌우된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누구나 개인은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고, 그 한계를 보완해주는 장치가 시스템이다. 물론 정부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고 말할 것이다.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있고, 청와대에는 국가안보실이 있다. 외교부도, 통일부도, 국방부도 있다. 하지만 이들 부처의 전문적 의견과 판단이 합리적으로 토론되고 조정되지 못한 채 대통령의 뜻만 따른다면 시스템으로서의 의미는 살아날 수가 없다. 합리적인 전문가들의 의견이 존중되는 시스템 속에서만 국민을 책임질 수 있는 정책이 나올 수 있다. 그런데 대통령 주변에는 역대 정부와는 달리 대북 전문가도, 외교 전문가도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 박 대통령은 나라 걱정에 밤 잠을 못 이룬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잠을 못 이루던 대통령에게 밤 사이에 든 생각이 곧바로 외교정책이 되고 안보정책이 된다면 위험천만한 일이다. 외교와 통일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전문적 관료들이 대통령의 심기에 눌려 그 누구도 다른 의견을 내놓을 수 없는 분위기에서는 국민의 생존을 책임질 외교 안보정책이 나올 수 없다. 하나의 판단만을 절대화하여 모든 출구를 없애버리는 것은 극히 위험한 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