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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두의 시선]늙지 않은 사람

 

 

 

“내가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는지 모르겠어. 난 전혀 내가 이렇게 나이를 먹지 않을 줄 알았는데” 한숨에다 시선마저 천정에다 주며 말하는 그는 아주 이상하다는 표정까지 지었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투였다. 그러면서 답답하다는 듯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그러면서 천정을 바라보며 껌벅거리는 그의 눈이 좀 이상했다. 흰자위에 팥알만 한 크기의 붉은 점들이 여러 개가 박혀서 옆에서 보기에도 불편해 보였고, 심지어는 흉측하게도 느껴졌다.

“눈이 왜 그러십니까? 좀 이상합니다.” 내가 궁금해서 물었다. 나와는 먼 친척으로 아저씨벌이 되었으므로 머뭇거리다가 공손하게 말을 건넸다.

“아 이거? 몇 년 전에 백내장 수술을 하고부터 이래” “뭐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안과에 가보셔야 되겠습니다” “안과가 어디 있어. 여긴 안과가 없어”

그러고 보니 사는 곳이 시골동네에다, 거기서 산을 한 개쯤 넘은 지역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곳을 지나는 길이 있어 소문으로만 듣던 그를 오랜만에 보고 싶었던 것이다. 막상 찾아보니 진귀한 풍경 속에서 그는 살고 있었다. 뒤는 그리 높지 않은 야산으로 숲이 울창했고, 앞으로는 시퍼런 색채를 띤 개울이 소리 없이 흘렀다. 그야 말로 배산임수(背山臨水)였다. 산허리를 뭉개서 일반 운동장의 절반가량의 넓이로 닦은 공터 위에 지은 한옥은 산속의 또 다른 비경(秘境)을 보는 듯했다. 그 앞에는 어디서 구했는지 하얀 자갈을 깔아 주차장을 만들었다. 20여대는 주차할 수 있는 공간에 깨끗한 새 승용차 한 대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그의 나이는 77세였다. 보기에도 그 정도로는 보이지 않았다. 60대 중반으로 보통 볼 것이었다. 외형으로 그렇게 보이는 데에는 예전의 그의 생활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고장의 농고(農高)를 다닐 때 그는 축구선수였다. 축구선수라 해도 이웃 학교와 친선게임 정도 하는 팀에 소속돼 있어서 어디다 내세울 수는 없지만 부지런히 공을 찼으므로 몸이 건강해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는 그의 건강에 우선 자신감을 가졌다.

“유일한 낙이 골프야” “농사 일 끝내고 부지런히 다니시지. 그게 뭐가 대단한 거라고” 한쪽 켠에 쪼그리고 앉은 그의 부인이 말을 거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기 고향의 군청에서 말단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인근 도시로 발령을 받고 줄곧 도시생활을 했다. 그리고 초등학교 동창인 여자와 결혼을 했고, 같은 공무원인 부인과 맞벌이를 하며 알뜰히 저축을 했는데 어느 날 그녀는 풍을 맞아 반신불수가 됐다. 그가 그처럼 좋아서 따라다니다 애걸하다시피 해서 결혼을 했는데, 하늘이 무너질 노릇이었다. 그는 재촉하여 공무원생활을 접고 고향 인근의 이 변두리에 3천 평가량의 땅을 장만하여 농고 출신답게 농사를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5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것이다.

“여기에도 골프장이 있나요?” 놀라서 내가 물었다. 의외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스크린골프라는 거 있지, 왜? 읍내에 있어” 나는 밖에 있는 승용차를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요즘은 쳐도 공이 멀리 가지 않아. 무릎하고 허리가 안 좋거든” “아하 그렇군요. 스윙스피드가 빨라야 공이 멀리 가는데, 무릎과 허리가 안 좋으면 그게 느리고, 허리 턴도 안 될 거지요” 나는 무릎과 허리가 안 좋다는 말에 연세가 있으니까 그러시죠, 하고 말을 하려다 그만 두고 다른 말로 대신했다.

아랫 쪽의 넓은 밭에 옥수수가 가득했고 토마토, 시금치, 배추, 고추 등이 질서정연하게 서 있었다. 자그마한 비닐하우스도 몇 채 보였다. 그러고 보니 그는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서서 허리를 뒤로 젖히고 움직이는데 다리까지 약간씩 절었다.

나는 삶은 옥수수를 씹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젠 연륜도 되시고 하니까, 골프도 농사도 그만 쉬시고” 그 말에 그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더니,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그만 쉬라고? 이 사람, 내가 늙은 줄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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