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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10번출구에 남긴 천사의 목소리

 

강남역 인근서 여성 무참히 살해
시민들 자발적 포스트잇 추모

경향신문사회부 포스트잇 촬영
외벽붙은 메모 문자화 전수조사
가장 많은 비중 차지한 내용‘추모’


2016년 5월 17일, 23세의 한 여성이 강남역 인근의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흉기에 찔려 살해당했다.

그녀를 살해한 남성은 “사회생활에서 여성들에게 무시를 당해 범행을 했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18일 오전부터 그녀가 살해된 곳과 가까운 강남역 10번 출구에서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포스트잇 추모’가 시작됐다.

출구의 외벽은 사건과 관련한 글이 담긴 포스트잇으로 뒤덮였고, 화환도 줄을 이었다.

서울의 한복판인 강남역 10번 출구는 피해자를 추모하면서 한국 사회의 여성 혐오에 대한 문제의식을 표출하는 상징적인 공간이 됐다.

5월 23일, 다음 날 비가 올 것이 예보되면서 이곳의 포스트잇은 보존을 위해 서울시청 지하 1층 시민청으로 옮겨졌고 경향신문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은 포스트잇이 옮겨지기 전, 강남역 10번 출구의 외벽에 붙은 포스트잇 1004건을 일일이 촬영한 후 문자화하는 전수 조사를 진행했다.

분석 결과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내용은 ‘추모’였다.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는 자조와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이 다음으로 많았다. 이번 사건을 여성 혐오로 해석하는 시선도 두드러졌다. 함께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다짐도 강했다.

추모의 글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고인’(273번), ‘명복’(281번), ‘빕니다’(288번) 등이었다. ‘추모’라는 단어도 38차례 사용됐다.

전체 메시지의 4분의 1 이상은 억울하게 숨진 피해자의 넋을 기리는 것이었다.

‘살아남았다’는 단어는 132차례가 쓰였다. 희생자에게 ‘미안하다’(111번), ‘죄송하다’(36번)고 한 횟수도 합쳐서 100차례가 넘었다.

시민들은 “한국 남자로서 부끄럽고 죄송하다”고 고백했다.

이번 사건의 성격을 여성 혐오(177번·‘여혐’ ‘hate crime’ ‘femicide’ 포함)로 규정하는 문제의식도 뚜렸했다.

‘남자’(187번·‘남성’ 포함)들은 “여성 혐오를 부정하는 눈뜬장님들”에 비유되기도 했다.

시민들은 “여성 혐오를 멈춰주세요. 공감할 수 없다면 침묵이라도 해주세요”라며 ‘살해’(58번)의 두려움을 털어놨고, ‘피해자’(53번)에 감정이입했다.

경찰의 발표처럼 ‘묻지마’(22번) 사건으로 해석하는 이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시민들은 “당신의 죽음이 결코 또다른 ‘한 여자’의 죽음이 되지 않도록 기억하고 싸우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잊지 않겠다’(33번)는 다짐은 물론 ‘안전’(46번)을 위해 ‘노력’(44번)하고 ‘행동’(16번)하겠다는 약속이 줄을 이었다.

책속에 담긴 채록물들은 시민들 각자의 마음을 담은 목소리기에 교정만을 거쳤을뿐 순서의 배치에 의도를 개입시키지 않았다.

이 1004개의 글들을 통해 죽은 이를 애도하고 서로의 슬픔을 위로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기를, 또한 동시대에 벌어진 한 살인 사건에 대한 반응을 보여주는 1차 자료로서 차후의 연구에 든든한 토대가 돼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민경화기자 m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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