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데없이
/정현종
사람이 바다로 가서
바닷바람이 되어 불고 있다든지.
아주 추운 데로 가서
눈으로 내리고 있다든지.
사람이 따뜻한 데로 가서
햇빛으로 비치고 있다든지,
해 지는 쪽으로 가서
황혼에 녹아 붉은 빛을 내고 있다든지,
그 모양이 다 갈데없이 아름답습니다
- 정현종 시집 ‘나는 별아저씨’ / 문학과지성사
아름답다는 말과 갈데없다는 말이 서로 어울림의 극치를 이룰 수 있다니, 이 또한 갈데없이 아름다운 일이다. 그 갈데없다는 말을 오갈데없다라는 말로 읽어보면 어떨까. ‘오’발음을 감추고 속으로 발음하며 이 시를 읽어보면 그 맛이 더욱 새롭다. 시가 시인의 손을 떠나면 독자의 몫이 되느니, 이만하면 시인도 독자도 다 같이 바다로, 추운 데로, 끝내는 해지는 쪽으로 가서 오갈데없이 황혼에 녹아내릴 수 있겠다. /조길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