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권기만
오래 바라보면 옮겨붙는다
한번 타오르면
꺼지지 않는다
골목에 찍힌 선연한 발자국
붉다못해 불이다
뜨거워 건들 수 없다
몸 던져 달려간 흔적
혼자 남아 국경처럼 지키는
젊은 날의 성화
외로움은 불이다
꺼지지 않는다
오래 바라보면 기어이
옮겨붙는다
-권기만 시집 ‘발 달린 벌’
능소화는 강렬하다. 그냥 주황색이라기보다 노란빛이 많이 들어간 붉은빛으로 사람의 시선을 한순간에 끌어당긴다. 넝쿨을 뻗어 나무를 휘감거나 담장을 타고 넘는 그 속성 때문에 관능적이기도 한데 시인은 그러한 강렬함을 외로움이라 한다. 골목에 찍힌 선연한 발자국처럼 붉다 못해 불이다 한다. 몸 던져 달려간 흔적을 혼자 남아 국경처럼 지키는 성화같은, 그 한때의 기억 속, 누군들 외로움의 깊이에 빠져본 적이 없겠는가. 그리하여 저 꽃은 오래 바라보면 꺼지지 않고 내게 옮겨붙는다. 내 안에 찍힌 화인처럼 잊고 있던 시간을 되살아나게 한다. 한 번 피기 시작하면 초가을까지 피고 지기를 이어가다 동백꽃처럼 통째로 떨어지는 꽃, 우리는 때로 이렇게 뜨거워 건들 수 없는 한 줄기 외로움을 눈앞에서 볼 때가 있다.
/서정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