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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마을 지키기

 

빗줄기가 굵어진다. 장마라 해도 내리지 않던 비가 오늘 따라 세차게 내린다.

퍼붓는 빗속에서도 동요가 없다. 우비는 입었다지만 땀과 비로 옷은 이미 흠뻑 젖었음에도 개의치 않고 한마음으로 자리를 지켜낸다. 얼굴에는 까만 매직으로 X라고 쓴 하얀 마스크를 하고 경마장 유치 반대 구호가 적힌 피켓과 현수막을 펼쳐 들고 제자리를 지켜가며 묵언 시위를 한다. 대부분이 면 소재지 주민들이며 학부모이기도 하다. 군중 속에는 갓난아이를 업은 젊은 엄마들도 여럿이 눈에 띄는데 사태의 심각성을 반증하는 것 같아 자꾸만 눈이 아이에게 간다.

요 며칠 사이에 마을이 어수선해졌다. 난데없이 도박장이나 다름없는 스크린 경마장을 우리 마을에 설치하겠다며 사업자 측에서 하는 사업 설명회가 있었다. 몇몇 사람들과 행정 당국에서는 지역 개발 호재라며 적극적으로 유치를 위해 동분서주 하는 모습이며 어느 정도 사업자 측과 교감이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몇 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동양 최대의 변전소가 들어설 때도 대부분의 주민들은 몰랐다. 관련도 없는 사람들에 동의를 받아 허가를 진행하며 당시 면사무소 2층에서 진행된 공청회에서는 면장이라는 분이 변전소가 들어오면 지역발전에 크게 기여를 한다고 역설을 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말이 변전소 부지 내에 직원을 위한 아파트도 지을 것이고 인구 유입도 많을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전자파는 전혀 인체에 해가 없다는 증거가 그것이며 그러니 반드시 유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에 주민들은 분노했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떠나 여러 대안을 제시하며 지역이 망가지는 것을 막아보려 부단히 노력을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허사였다. 변전소가 들어서고 보니 아파트커녕은 상주 직원도 몇 없고 많은 일자리로 지역주민을 많이 채용한다던 말들도 경비직원 몇 명으로 만족해야 했다.

걱정이 보통이 아니다. 인구 만 명 남짓한 시골 마을에 고속도로 개통후로 접근성이 좋아지다보니 좋아진 점들도 많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오늘의 골칫거리도 그 일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도심 유흥지역도 아니고 조용한 시골 마을에 도박장이라니 자다가도 깜짝 놀랄 일이다. 지역 발전과 후원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은 역겹기까지 하다. 소탐대실을 넘어 우리 아이들에 정체성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 일이며 우리 마을에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장외마권 발매소인 스크린 경마장의 허가를 막기 위하여 동분서주하고 있다. 빗속에서의 묵언 시위는 물론 청원을 위한 서명받기에 발 벗고 나서는 주민들을 볼 때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나도 오늘은 서명지를 들고 다니며 많은 사람들에 서명을 받았다. 그러나 개중에는 남에 일이라고 함부로 하는 말에 속상함도 적지 않았다. 사람들은 망가져도 동네는 경기가 좋아질텐데 왜 반대를 하냐. 망가지는 사람이 있어야 좋아지는 사람도 있지, 장사하는 사람들은 좋아지는 거 아니냐.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논리를 넘어 당장 흥청일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위험한 생각들이 어느새 우리 사회에 만연한 거 같아 슬프기는 하나 엄마 등에 업혀있던 아이의 눈망울에서 희망을 지우지 않으려는 많은 사람들의 오늘의 노력들이 후일의 우리의 자랑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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