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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여행]태강릉에서 문정왕후의 시호를 생각하다

 

 

 

가을바람이 차가운 날, 태강릉을 다녀왔다. 태강릉은 중종의 세 번째 왕비인 문정왕후의 태릉과 그녀의 아들인 조선의 13대 임금 명종의 강릉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 태강릉은 왕릉과 더불어 넓은 자연녹지, 그리고 조선왕릉 전시관이 잘 갖춰져 있어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는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왕이 승하하면 국장을 치러 최고의 예를 갖추었다. 이를 위해 3개의 임시관청을 두었는데 빈전도감과 국장도감, 산릉도감이 그것이다. 빈전도감은 빈전을 설치하고 국장에 필요한 모든 일을 맡아 처리한다. 산릉도감은 왕릉조성과 관련된 일을 맡으며, 국장도감은 발인절차에 필요한 업무를 처리한다.

또한 왕이 살아생전 그의 공덕과 업적 등을 평가하여 시호를 올리게 되는데 본래 시호는 죽은 이의 살아생전 행적의 선과 악을 평가하여 후대에 교훈으로 삼고자 하는 포폄의 의미가 담겨있다.

매표소를 통과해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조선왕릉 전시관이 우리를 맞는다. 조선왕릉 전시관에는 조선의 국장에 대한 내용이 모형과 사진, 글, 유물 등을 통해 자세하게 전시되어 있다. 빈전에 왕의 시신을 안치하는 내용을 포함해 왕릉을 조성하고, 조성된 왕릉에 왕을 모시는 일까지 자세하게 알 수 있다. 특히 정조의 국장 행렬 중 대여를 전시한 모형은 조선국장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기에 충분하다.

조선왕릉을 빠져나와 태릉으로 발길을 옮겨보자. 중종의 세 번째 왕비인 문정왕후는 중종의 옆자리에 묻히길 원했으나 그녀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조선시대 왕비들은 남편인 왕이 살아있었을 때보다 죽었을 때가 더 빛이 나는 것 같다. 후계자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왕이 승하하면 차기 왕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왕비한테 주어진다.

후계자가 정해졌으나, 아직 미성년이라면 새로운 왕을 대신해 왕실의 최고어른인 대비가 정치를 하게 되는데, 태릉의 주인공인 문정왕후가 이 경우에 속한다. 종종이 세상을 떠나고, 인종이 9개월 만에 승하를 하자 문정왕후의 아들인 명종이 12살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다. 문정왕후는 12살의 명종을 대신해 수렴청정을 실시하게 되고 수렴청정은 명종이 20살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문정왕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지만 수렴청정기간에는 매관매직이 빈번했고, 임꺽정의 난이 일어난 시기임을 감안한다면 결코 백성을 위한 정치를 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문정왕후의 수식어처럼 표현되는 ‘여인천하’, ‘여왕’이라는 단어는 긍정적인 의미라기보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문정왕후는 ‘성렬인명문정왕후(聖烈仁明文定王后)’라는 시호를 받았다. 하지만 시호의 포폄의 의미를 되새겨볼 때 제대로 평가 되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후대 왕의 입장에서는 분명 칭송 쪽에 무게를 더 두어 시호를 올렸음이 자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대에 문정왕후에게 시호를 다시 올린다면 사람들은 어떤 시호를 올릴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호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그러나 살아생전 행위의 선악을 평가하는 시호는 내가 죽고 나서 세상은 ‘나’를 어떻게 기록할지에 대해,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특히 지금의 ‘나’가 일반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더욱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어머니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고 명종은 2년 뒤에 승하하게 된다. 문정왕후와 명종은 행복한 삶을 살았을까? 아들을 왕위에 등극시켰지만 결과적으로 아들 명종은 어머니의 그늘에 가려 빛을 발하지 못한 임금이 되었다. 태릉의 문무인석은 얼굴과 몸통의 비례가 1대 4 정도로 머리 부분이 거대한 편에 속한다. 어쩌면 이 비정상적인 비율이 문정왕후와 명종의 관계를 말해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을비로 낙엽이 하나둘씩 쌓이는 계절, 태강릉에서 오늘을 살고 있는 ‘나’의 행위와 죽고 나서 기록될 ‘나의 시호’를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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