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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여행]심우장과 길상사를 찾다

 

 

 

차가운 겨울, 故 정원스님의 시민사회장 소식을 접하면서 심우장으로 향한다. 심우장은 만해 한용운 선생님이 늘그막에 거처하다가 돌아가신 곳이다. 1933년에 지어진 집이니 84년 정도 된 한옥이다. 햇살 좋은 봄가을에 찾으면 좋으련만 심우장은 이상하게도 더운 여름이거나 추운 겨울에 주로 찾게 된다. 그래서일까 인적이 드문 4칸짜리 한옥은 더욱 더 쓸쓸함만이 감돈다. 한옥이 보통 남향을 향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이곳은 북향이다. 이유는 남쪽에 있는 조선총독부가 꼴 보기 싫어서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북향으로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래저래 쓸쓸함의 이유만 추가된다.

만해 한용운 선생님이 머무시던 방에는 선생님과 관련된 몇몇 자료를 전시해두고 있다. 마당 한 켠에는 선생님이 손수 심었다는 향나무도 눈에 뛴다. 한용운 선생님은 이 마당을 거닐며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 생각들이 향나무에 전해진 것일까,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변하지 않고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다.

이곳 심우장에서는 만해 선생님의 벗이자 동지였던 일송 김동삼 선생의 장례가 치러졌다.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만난 인연이 벗으로 발전한 사이였다. 김동삼 선생은 독립운동을 하다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으며, 그의 시신을 한용운 선생이 수습하여 이곳에서 장례를 치르고 유해는 화장하여 한강에 뿌렸다. 그의 죽음은 나라를 걱정하는 만해 한용운 선생님에게는 커다란 슬픔이자 좌절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해 한용운 선생은 우리나라의 독립을 굳게 믿었던 듯하다. 그는 ‘몸과 마음을 바르게 가지고 사람의 본분을 지키면 다른 세상이 올 것’이라고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주말마다 촛불집회가 열리는 요즘, ‘몸과 마음을 바르게 가지고 사람의 본분을 지킨다’는 것에 대해 새삼 되새겨 본다.

심우장을 떠나 근처 길상사로 향한다. 길상사는 법정스님이 입적하신 곳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출발은 고급요정이었다. ‘길상사’라는 이름을 갖기 전 이곳은 고급요정 ‘대원각’이었다. 당시 시가로 1천억 원 대의 규모였으니 얼마나 규모가 컸었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당시 대원각의 주인은 ‘김영한’이라는 기생이었다. 그녀는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을 받아 대원각을 시주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하지만 법정스님은 선뜻 받아들이지 않았다.

10여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지속적으로 청한 끝에 그녀의 소원은 이루어질 수 있었다. 7천여 평의 땅과 건물 전체를 기부하는 통 큰 기부였다. 1997년 대원각이 ‘길상사’가 되었을 때 그녀는 ‘길상화’라는 법명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법명 ‘길상화’를 받은 지 불과 2년 만에 그녀는 이 세상과 이별하였다. 그녀의 기부는 어쩌면 세상과의 이별을 미리 준비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유골은 길상헌 뒤쪽 언덕바지에 뿌려졌고, 지금 그 자리에는 작은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그녀가 존경했던 법정스님은 2010년 입적을 하게 된다. 법정스님이 평소 계시던 진영각은 현재는 법정스님의 진영과 생전에 쓰시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진영각에는 스님의 나무의자도 함께 놓여 있는데, 참으로 스님다운 나무의자이다. 법정스님은 이 의자에 앉아서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의자대신 툇마루에 앉아 길상화님과 법정스님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어떤 감명을 받으면 그렇게 통 큰 기부를 할 수 있을까. 온갖 비리에 연루되어 대통령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고 있는 요즘, 무소유를 주창하고 온몸으로 실천하신 법정스님과 그 스님께 감명을 받아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역시 무소유로 생을 마감한 길상화님을 통해 돈에 대한, 물질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유난히 차갑고 유례없는 겨울이지만 심우장과 길상사를 찾아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하는 삶, ‘바르게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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