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는 사회와 역사에 의미 있는 성취를 남긴 인물의 삶을 복원하는 작업이다. 한 인물을 통해 지난 시대를 바라보는 일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시야를 넓히면서 사고의 깊이를 깊게 하는 계기가 된다.
전기는 과거를 바라보는 창문인 동시에 현대와 연결되는 역사의 통로 역할을 한다.
이충렬 작가는 이런 이유에서 전기에 집중했다.
간송 전형필, 혜곡 최순우, 수화 김환기 등 문화 발전에 공헌한 3인과 민주화와 정의를 위해 노력했던 김수환 추기경의 전기를 썼던 그가 국제법학자 백충현 교수의 삶을 조명했다.
젊은 법학도였던 백충현은 판검사의 길을 버리고 국제법학자의 길을 선택했다. 19700년 하버드대학교 로스쿨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동아시아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했던 그는 우리나라 국제법이 개발도상국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절실히 느꼈던 것.
“국가 간의 분쟁은 외교의 힘으로 해결된다고 믿기 쉽지만, 외교의 힘은 항상 법적 이론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정당한 방법으로 행사될 수 있다”라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백충현 교수는 1972년 귀국 후 국제법 연구에 매진했다.
백 교수는 20대 후반부터 독도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에 매진해 국제법적 근거를 마련했고 독도 영유권의 결정적 증거인 ‘관판실측일본지도’를 입수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사후에 빛을 발하며, 2010년 독도 영유권 수호 유공자로 인정돼 국민훈장인 ‘동백장’이 추서되기도 했다.
또한 20년 동안 논쟁을 불러일으킨 프랑스 외규장각 의궤 반환 문제에 투신, 맞교환 정책에 반대하며 조건 없는 반환을 일궈냈다.
재일 동포들의 지문 날인과 강제 퇴거에 저항했고, 위안부에 대한 일본의 책임이 소멸되지 않았음을 국제법적으로 증명했으며, 유엔 인권 특별보고관으로서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집단 학살과 난민 문제를 전 세계에 알렸다.
이처럼 백충현 교수는 한국인이 기억해야 할 숨겨진 학자적 양심이었다.
이 책에서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사회에서 학자적 양심과 통찰로 조국과 인권에 헌신했던 법학자의 삶이 희소가치 높은 사료들과 함께 생생하게 펼쳐진다.
/민경화기자 m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