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여성 서양화가
근대여성 지식인 원류 평가
식민지시대 시각 바로잡아
신여성 삶·사상 살펴보기도
4명 문인, 만혼타개 좌담회 실어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인 나혜석은 화가로서도 재능을 펼쳤지만 여성이 말을 하고 글을 쓸 때 세상이 달라진다고 믿었던 근대 페미니즘 작가기도 했다. 그는 일본 유학 시절 잡지 ‘여자계’의 발행을 주도했을 뿐 아니라 여성 인권에 관한 논설은 물론이고 조혼과 가부장제 사회를 비판하는 소설도 꾸준히 발표했다. 이후 1920년, 일본 유학생이었던 김우영을 만나 결혼하지만 파리에서 만난 최린과의 연애사건으로 1930년 이혼하면서 나혜석의 삶은 큰 변화를 겪는다.
이혼 이후 자신의 삶을 함부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향해 나혜석은 직접 나서 이혼의 전모를 밝히기로 결심한다. 1934년 ‘삼천리’를 통해 발표한 ‘이혼 고백장, 청구 씨에게’가 그것이다. 이 이혼고백서를 통해 나혜석은 자신의 삶을 고백함과 동시에 남성들의 이중적인 태도를 강도 높게 비판했지만, 가족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 외면당하게 된다. 이후 나혜석은 1948년 12월 10일 서울시립 자제원 무연고자 병동에서 생을 마감한다.
“칼자루를 쥔 남성 중심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칼날을 쥔 여성들이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고 말과 글을 남겨야 한다”고 믿었던 나혜석은 자신이 다치게 되더라도 직접 글을 쓰는 길을 선택했다. 이처럼 진실을 직접 밝히겠다는 나혜석의 의지는 그녀를 오늘날 근대 여성 지식인의 원류로 평가받게 했다.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은 신여성을 식민지 사회의 특이하고 신선했던 볼거리 대상으로 접근하고 소비하는 현시대의 시각을 바로잡기 위해 펴낸 책이다. 나혜성의 말과 글을 통해 그 시대 신여성으로 불렸던 이들의 삶과 사상을 살펴본다.
책의 1부는 나혜석의 가장 대표적 단편 소설인 ‘경희’와 나혜석의 문학관을 파악하기에 유용한 단편 ‘어머니와 딸’을 실었다. 특히 ‘경희’는 최초의 한국 근대 여성 문학으로, 여성 지식인으로서 봉건적 가부장제와 인습에 어떻게 맞서 싸워야 할지 고민하는 나혜석의 모습이 담겨 있다. 2부에는 나혜석이 여성의 연애와 결혼에 대해 쓴 글을 담았다. 대표적인 페미니즘 논설인 ‘이상적 부인’은 ‘현모양처는 그야말로 세속적 가치에 그칠 뿐 결코 이상적인 여성의 모델이 될 수 없으며, 온양유순이라는 개념 또한 여성을 노예로 만들기 위해 사용된 것’이라는 주장이 담겨있다.
3부에는 나혜석이 이혼 이후에 발표한 조선의 가부장제를 비판하는 ‘이혼고백장’과 여성에게만 정조를 강요하는 남성 이기주의를 고발하는 ‘신생활에 들면서’를 실었으며 4부에는 나혜석의 페미니즘 육아관을 엿볼 수 있는 기존의 모성 통념에 반하는 글을 모았다. 마지막 5부에는 나혜석의 정치의식을 담은 글과 근대 신여성의 직업관에 대한 글을 소개한다.
아울러 각 부의 말미에는 나혜석과 함께 이광수, 김기진, 김억 이렇게 네 명의 문인이 1930년대 당시 미혼 남녀들이 결혼을 늦게 하는 풍조를 비평하는 ‘만혼 타개 좌담회’가 부록으로 실려 있다.
/민경화기자 m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