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은 무엇이고,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일까?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은 남을 비판 하는 것이고, 아울러 가장 어려운 것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다, 라는 말과 더불어 세상을 옳게 사는 길이 무엇인가에 대해 그는 다른 사람이 그런 짓을 한다고 비난하는 바로 그 행위를 자신 스스로 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참되게 사는 길이라고 외쳤다.
더불어 사는 현실 속에서 상대를 이해하고 상대가 나를 이해하고 납득할 만한 처세를 하고 산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사람들 각자의 생각과 태도가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
어떤 경쟁 관계에서 승패의 다른 입장에 놓였을 때 상대의 실패와 실족에 대해서 상대가 무능하고 부족하고, 자신은 역량이 뛰어나서 그러한 결과를 갖게 되었다는 과신과 오만함을 갖고 상대에 대한 비난과 자신의 실제 모습을 잃고 승리와 성취에 도취되어서 그릇된 행동을 하는 경우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민의는 여당의 압승을 이끌어 주었다.
야당의 정치적 과오에 대한 심판으로 이어졌고 여당은 상대의 잘못된 정치적 일탈에 대한 유권자의 심판을 받은 것이라 생각된다. 그 결과 광역을 비롯 기초의회의 구성된 분포가 여대야소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유야 어떻든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 정당의 자기반성과 더불어 자신들의 잘못된 행태를 돌아볼 기회를 가져야 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상대의 실패를 바라보는 여당 또한 자기 과신에 빠지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용인의 시의회에서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했다.
선거 결과 의원구성 분포가 중립지대의 성향을 포함해서 여당 18명 야당 11명의 의회가 구성되었다.
선거 결과를 두고 보면 의장을 비롯한 원내 상임위 배정에 대하여 다수당 중심의 구성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측과 더불어 여대 야소의 구성이지만 관례와 의회의 기능상 부의장은 야의 몫이고 상임위 배정 또한 적절한 여야의 안배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임위 배정에 대한 양당 의견 조율과정에 불협화음이 있었고, 야당 의원이 참석하지 않은 자리에 여당 의원들만으로 의장과 부의장을 비롯 상임위 전체를 독식하는 결과를 내놓았다. 아무리 다수당이지만 야당의 협조가 없이 앞으로 의회 운영을 어찌 할 것인지 내심 염려스럽다. 이번 일을 두고 들려오는 후문은 더 가관이다.
“예전에 당신들이 다수당일 때 그랬기에 우리도 그리 했다”라는 것이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잘못된 관행을 답습하고 그리 합리화 하는 저의가 궁금하다.
우리 사회 관행처럼 여겨지는 다수결의 원칙과 우위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사고방식과 이해(利害)가 다르므로 집단전체 성원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항상 의견차이가 발생한다. 아울러 집단 내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합리적 의사결정방법이 필요한데, 민주주의 사회는 다수결 원칙에 따라 의사를 결정한다. 다수결의 원칙은 각자에게 주어진 한 표로써 자신의 의사를 표명한 뒤 다수의 의견을 전체의 의사로 간주하는 의사결정방법이다. 다수결 원칙의 한계인 절대적 평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구성원간의 대화와 토론이 필요하다. 이해(利害)보다 사회 정의와 사회발전을 중시해야만 다수결이 낳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용인시의회는 당신들만의 의회가 아니라 100만 용인 시민을 위한 민의(民意)기관이다.
바라기는 원칙과 상식이 통용되고 상대의 입장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의회가 되어야 한다.
선거에서 이긴 것은 본인들이 잘났고 정치적 역량이 뛰어나거나 대단한 능력을 지닌 것이 아니라 자신을 알지 못해 오만한 정치를 했던 상대의 식상함에 심판으로 주어진 몫이라는 것을 알고 반면교사의 교훈으로 삼아 본인들 또한 그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
4년은 그리 길지 않다. 영원한 것은 없다. 지나침이 부족함만 못하다는 가르침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