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회찬 원내대표는 살아있는 말로 진보의 가치를 확장시킨 정치인이었다.
17대 총선 당시 한 방송사 토론회에서 “50년 동안 한 판에서 계속 삼겹살을 구워 먹어 판이 새까맣게 됐으니 삼겹살 판을 갈아야 한다”는 ‘판갈이론’으로 일약 스타 정치인 반열에 올랐다.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당선, 국회에 입성한 뒤 법제사법위원회 첫 국감에 임해선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하는데 1만 명만 평등한 것 아닌가”라고 사법부를 질타하기도 했다.
이어 정치권에서 종북(從北) 논란이 일자 “원조 종북이라면 박정희 장군”이라며 새누리당에 맞불을 놓았다.
지난 2016년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미르·K스포츠재단 불법 모금 의혹과 관련, “박근혜 대통령은 죄의식 없는 확신범”이라고 꼬집었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 정의당 지지를 ‘사표’라고 주장하자 “이마트 사장이 국민에게 동네 슈퍼는 다음에 팔아주라고 하소연하는 상황”이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노 원내대표는 국민의당이 문준용 의혹 제보 조작 사건을 당원 이유미씨의 단독 범행이라는 자체 조사 결과를 내놓자 “냉면집 주인이 ‘나는 대장균에게 속았다’라고 하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지난달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인제 전 의원 출마 얘기가 나오자 “새로운 세대들에게는 ‘듣보잡(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놈)’이다”라며 “길 가다가 구석기시대 돌 하나 발견한 그런 것”이라고 혹평했다.
노 원내대표가 늘 독설만 내뱉은 거친 정치인은 아니었다.
주변의 소수자와 약자, 노동자에 대한 연민도 남달랐다.
지난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하루 앞두고 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쓴 조남구 작가, 동료 당직자와 보좌진, 국회 여성 청소 노동자, 국회 여성 기자들에게 장미꽃 260송이를 선물했다.
지난 2005년부터 매년 같은 이벤트를 해온 그는 “권력의 힘으로 강제된 성적 억압과 착취, 침묵과 굴종의 세월을 헤치고 터져 나오는 현실을 보며 부끄러운 마음을 감추기 어렵다”고 말했다.
암울한 정치상황을 풍자와 해학으로 국민에게 희망을 준 그의 재치를 더이상 들을 수 없다는 것, 그의 죽음을 국민들이 슬퍼하는 이유 가운데 앞자리에 놓일 덕목 가운데 하나다./최정용기자 wes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