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효서의 신작 산문집 ‘소년은 지나간다―스물네 개의 된소리 홑글자 이야기’가 출간됐다.
2016년 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2년에 걸쳐 월간 ‘현대문학’에 연재됐던 스물네 편의 글들을 모은 이 책은 연재 당시 된소리 홑글자들이 화자로 등장하는 독특한 내용과 형식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은 바 있다.
작가가 유년을 보낸 바닷가 마을의 전후 풍경, 그곳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다양한 사정과 속내를 서정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자전소설 형식의 이 산문집은 작가 개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과 기억을 통해 현대사의 질곡 속에서도 끈질기게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놓지 않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세밀히 보여주는 한 폭의 정밀화 같은 느낌을 준다.
작가 특유의 사려 깊고 따뜻한 시선과 밀도 있는 문장, 구성진 이야기의 향연인 이 책에서 작가는 자신의 존재 근원이라 할 만한 고향 마을과 1965년부터 1970년까지의 유년 시절이라는 특별한 공간과 시간을, 특유의 해학과 유머를 곁들인 서정적 문체에 담아 내어놓는다.
이 책을 보다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스물네 개의 ‘된소리 홑글자’들이다.
‘된소리 홑글자’들은 단순한 소리이자 글자가 아니라 마을을 지켜보는 관찰자로 등장, 당시의 시대상과 마을 사람들을 그려내고, 그들을 둘러싼 여러 사건의 이모저모를 풀어내는 매개로 훌륭히 기능한다.
이로 인해 작가는 자신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전후시대 민통선 인근 마을을 배경으로 우리 모두의 어두운 그림자와 상처를 향해 다각적으로 접근한다.
그렇게 그런 시절, 그런 유년을 보낸 그는 자신의 입과 말과 글만으로는 이야기할 수 없었던 것들을 침묵과 실어와 어눌의 다른 이름을 빌려 구효서만의 아름답고 세밀한 묘사, 개성적인 문장과 함께 도처에 있는 듯하면서도 실재하지 않는, 한 마을과 당시의 분위기를 오롯하게 재탄생시키며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를 완성했다.
지난 시절과 잊을 수 없는 기억에 대한 작가의 내밀한 이 기록은 스물네 개의 퍼즐로 꿰어놓은, 향수를 위한 작업이다.
이 퍼즐을 맞춰가는 독자들은 일상의 속도와 관계에 치여 잊고 살았던, 저마다의 희미한 기억이 마지막 페이지로 가는 여정에서 점점 또렷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작가는 지나온 시간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함께 이야기로 쓸 수 있게 된 된소리 홑글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도 담아놓았다.
지나가버릴 소년에게, 청춘에게, 사랑에게, 인생에게, 땅에게 인사를 건네는 이 한 권의 책은 한때 소년이었던 이라면 누구나 시간을 초월한 감동과 된소리 홑글자의 유희가 주는 독서의 즐거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정민수기자 j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