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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칼럼]행복한 삶에 대하여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마치 동결 건조된 듯 우리 삶의 여러 가지 다양한 면을 포착하지 못한다. 사과만 하더라도 조그만 초록색의 풋사과였다가 점점 커지면서 붉은 기를 보이고 급기야는 빨간색 사과로 변한다. 내가 “빨간 사과”라고 말하지만 빨간 사과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시든 빨강이 되고, 겉 표면에 까만 점이 피기도 하고, 썩게 되면 빨간색이 팥죽색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단어는 하나의 고정된 모습을 포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과하면 빨강을 연상한다. 여기에 언어와 실재와의 간극이 존재한다.

간극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우선 사물은 하나의 모습을 갖지 않고 변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인간의 눈 또한 객관을 포착할 만큼의 능력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늘 자기 관점만을 서술한다. 이에 반해 우리의 행위는 우리가 참이라고 믿는 것에 기반 한다. 참이라고 믿는 것, 즉 진리처럼 여겨지는 생각을 바탕으로 우리는 행동을 한다.

최근의 방송을 보면 여행과 맛집 프로그램이 대다수다. 여기에는 꼭 빠지지 않는 신조어,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나온다. 소확행에는 우리 청춘들에게 꿈을 꿀 자유를 차단시켜버린 사회적 고통에 대한 반항인지 자포자기인지 모를 씁쓸함이 묻어있다.

작은 경험에 의미를 두고 시간과 돈을 쓰는 일은 기성세대가 살아온 것과는 꽤 거리가 있다. 1960∼80년대의 부모님들은 자식들에게 거시적인 꿈을 꾸라했다. 라면을 먹더라도 힘에 부친 꿈을 가지라 했다. 부모님들은 그렇게 자식을 키우고 그렇게 큰 것을 희망하느라, 자식들에게 어떤 고민이 있는지를 살피지 못했다.

21세기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비정규직 양산과 낮은 취업률, 살인적인 주거비 등 꿈을 꾸는 것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청춘들은 일상에서 확실하게 얻을 수 있는 것에 몰두한다. 미국에서 시작된 킨포크(KINFOLK) 라이프는 가족, 이웃과의 소통, 느린 삶이 주는 미학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텃밭을 가꾸고 직접 수확한 유기농 식재료로 만든 친환경의 소박한 밥상으로 이웃들과 식사를 즐기는 일상의 소소한 풍경을 의미 있게 여긴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가 중요하다고 한다. 자신이 경험한 작은 행복들의 다발이 지친 우리 삶을 위로하고, 다시 삶을 이어가게 하는 행복의 유인책으로 작동한다.

그런데 행복이라고 믿는 믿음, 행복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 등의 믿음은 배신에 대한 두려움도 함께 가진다. ‘이것이 다인가?’, ‘이 다음은 무엇인가?’에 대한 회의감은 지금까지 행복의 다발들이라고 믿었던 것에 더 큰 절망과 공허를 초래한다. 그러므로 소확행이 청춘들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답인가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현재와 미래의 균형점, 지금의 소소한 행복을 즐기면서도 미래를 향해 열리는 꿈을 꾸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맛이나 즐거움이 현실을 잊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순간의 행복이 미래를 계획 할 수 있는 힘을 주게 해야 한다.

신조어를 포함한 어휘는 단지 세계의 한 단면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 단어는 사람들과 사회의 가치관까지 담는다. 소확행은 기성세대들이 꿈이라 생각했던 것들을 더 이상 성취할 수 없음에 대한 좌절과 비판, 작은 것들에 대한 의미와 일상의 소중함을 간과함에 대한 반성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인생 뭐있어?’라며 작은 것에 만족하며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자조까지 깃들어 있다. 이러한 믿음으로 열풍처럼 이는 먹방 시청과 맛집 찾기 그리고 SNS에 자랑하듯 올리는 사진 등은 쓸쓸함을 남긴다. 작은 것의 행복을 아는 것도, 살아가는 것도 좋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의 다라면, 우리는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이나 ‘연어’에 나오는 은빛연어와 같이 도전하는 삶의 위대함과 경의로움을 만날 수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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