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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칼럼]시드니의 불꽃놀이를 추억하며

 

 

 

9월이 시작됐다. 뜨거운 여름을 보낸 장소에는 수많은 추억이 새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기억이 추억되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그 모든 순간이 다 행복했다고 기억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의미 있는 시간은 인생의 어느 순간을 반추하게 만든다. 왜 그럴까? 필자는 장소가 추억이 되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인출되는 것은 바로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지난 시간 속 시드니의 새해맞이 불꽃놀이는 황홀했다. 그러나 황홀한 만큼 고생했던 기억이 크다. 그날 나는 불꽃놀이 인파에 밀려 길을 1시간동안이나 헤맸다. 군중 속에 갇혀본 사람은 안다. 군중 속에서는 내가 어디로 갈 것인지가 무의미하다. 그저 군중이 움직이는 방향에서 내가 중심을 잘 잡고 있어야 그나마 내가 가려고 하는 곳을 잊지 않을 수 있다. 그러기에 그날 인파속에 섞여 길을 찾는 과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두려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시드니를 떠올리면 기분이 좋다. 그 이유는 화려했던 불꽃놀이도 멋진 오페라하우스도 시드니의 화창한 날씨도 아니다. 사람 때문이다.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두 손 꼭 잡고 힘듬을 함께 나눴던 사람 때문이다. 내가 의지 할 사람이라고는 그 사람뿐이었으며 불안감을 나눌 수 있는 사람도 오직 그 사람 하나였다. 서로는 힘이 됐고 의미가 되었으며 그 자체로 ‘함께’라는 하나인 존재였다.

시간이 흘러 이젠 그를 볼 수 없다. 하지만 시드니를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따스해진다. 우리가 아직도 ‘함께’인가 싶을 만큼 말이다.

추억의 핵심은 장소가 아니라 함께한 누군가이다.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 또 나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으쓱 용감해지고 행복한 일이다. 우리에게 추억이 되는 과거는 의미 있는 사람과의 만남과 소통이 준 선물이다. 최근 국내연구진에 의해 추억의 장소에 가면 가슴 설레는 이유가 밝혀졌다고 한다. 행복감을 유발하는 오피오이드 화합물이 뇌세포의 일종인 별세포와 결합하는 과정에서 특정 장소를 좋아하는 기억이 형성된다는 원리인데 뇌가 그 장소와 관련된 선호하는 기억을 떠올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이 들면 추억으로 산다고 했던가! 그 사람과 그 장소를 기억함으로써 행복감을 더 연장하려는 생존 욕구인지도 모르겠다.

일명 AI인형이라 불리는 ‘리얼돌’에 대한 찬반논쟁이 뜨겁다. 개인의 취향과 자유와 행복 그리고 사회적 통념사이의 논쟁들 사이에서 사람의 감정을 연구하는 필자는 사뭇 걱정이 된다. 인형 아닌 사람과 사람이 서로 교감하며 사는 것은 왜 중요할까?

행복에 관한 가장 오래된 연구이다. 사는 동안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버드대학에서 75년간 남성 724명의 인생을 추적한 연구에 의하면 좋은 대인관계가 사람을 건강하게 하고 행복하게 만든다는 결론이다. 어찌보면 너무 뻔한 결론이고 인공지능시대에 너무 순진한 결론이지만 그만큼 중요하고 어렵다는 것일 게다.

연구결과 중 ‘관계의 질’은 인상적이다. 애정없이 갈등만 잦은 결혼생활은 이혼보다도 더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50세 때 관계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던 사람들은 80세에 가장 정신적으로 건강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바람직하고 친밀한 관계가 나이듦에 대한 고통의 완충제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30분에 한 명꼴로 자살을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경제적 어려움이나 우울증 때문이라고 쉽게 결론낸다. 하지만 돈이 없다고 우울하다고 사람들이 다 자살하지 않는다. 자살한 사람 곁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의미 있는 관계가 사라지면 존재의 의미가 사라지게 되고 자살생각이 쉽게 노크 할 것이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도 우리를 죽게 하는 것도 결국 사람이다.

인생은 짧기에 다투고 사과하고 가슴앓이하고 해명을 요구할 시간이 없다. 오직 사랑할 시간만이 있을 뿐이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이 더 의미 있게 들리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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