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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통찰]분노의 절제

 

 

 

 

 

사람은 누구나 분노를 품을 때가 있다. 요즘엔 화가 잔뜩 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가는 것 같다. 분노는 부당함에 대한 항거와 자신과 타자에 대한 증오심으로 생기는 경우가 있다.

나는 생전 처음 광화문 집회에 두 차례 참석했다. 신기하게도 시위에 참석한 수많은 사람들 중에 욕설을 하는 사람들은 매우 드물었다. 군중들은 분노 표현을 절제한 것이다. 다 함께 힘껏 함성을 지르고 귀가할 때는 가슴이 뻥 뚫린듯한 시원함을 느꼈다.

미국의 심리상담가 로널드 T.포터에 의하면 분노는 “우리 뇌가 극도의 스트레스나 위협을 인지했을 때 나타나는 자기방어의 일환이며, 그 뇌는 살아남기 위해 필요하다면 우리를 가로막는 그 모든 것을 파괴하라는 명령을 본능적으로 내린다”고 한다. 분노를 잘못 표출하면 분노→고함→욕설 내지는 혐오발언으로 발전하게 되며, 혐오발언은 빨리 확산되고 선동효과가 있어 폭력을 낳을 수 있다.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르완다의 투지족 대학살은 의도적으로 반복된 혐오발언들에서 태동했다.

나는 요즘 혼자 있을 때 욕을 하는 경우가 잦아졌고 이것이 되풀이되면서 세상의 현상들이 부정적으로 보일 때가 많아졌다. 자동차가 끼어들 때, 지하철이나 버스가 지연될 때, 무능하고 염치없는 정치인들을 접할 때, 서비스업 종사자들에게 불만이 있을 때 화를 내거나 언성을 높여 항의하는 습관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면 화가 풀리는 것 같았지만, 영혼이 파괴되는 아픔이 더 컸다.

보름 전 전 서울의 한 단골 서비스업체에서 작은 일로 종사원에게 고성을 지른 일이 있었다. 돌아와 생각하니 그때 내 모습은 지킬박사를 가장한 미스터 하이드와 다름없었으며, 그들에게는 큰 상처를 줬고 한동안은 일할 의욕도 잃었을 것이다. 지난 주 내가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회사에서 종업원 4명이 SNS를 통해 회사 대표와 다른 직원을 비방하는 말과 욕설을 주고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대표는 대단히 화가 나 있었고, 다른 피해 직원 마음도 매우 상해 있었을 것이다. 글이 대부분 욕설로 이루어졌고 내용은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이들의 행위는 매우 중대한 과오였다.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욕설의 수준에 오른 나도 대화 내용을 보니 상상할 수 없는 혐오발언과 욕설이 가득 했다.

그들과 면담해 보니 각자의 마음속에 한 덩어리씩 분노를 품고 있었다. 모두 외근 직원들이라서 찌는듯한 여름 동안 분노가 커져갔고 이것을 타인에 대한 비방글을 주고받는 방법으로 표출한 것이다. 그들은 모두 비슷한 또래의 청년들이라서 서로 동질감을 느끼며 이런 행위를 지속하는 바람에 결국 회사 내에서 발각된 것이다. 진정으로 사과하지 않는 3명은 그날로 퇴사 했고 잘못을 뉘우친 1명은 회사에 남기로 했다. 대표는 각자에 대한 형사고소는 하지 않기로 했다. 대표와 피해 직원은 남기로 한 직원과 계속 대면하기가 쉽지 않고, 모두에 대해 형사고소를 하고 싶었겠지만, 청년들이기에 관용을 베풀었다. 또한 대표를 비롯한 직원들은 떠난 사람들이 어진 심성을 지니며 행복하기를 빌었다.

누구나 가끔은 분노하고 때에 따라서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감정표출을 한다. 직장, 가정, 마을에서 분노를 제대로 해소하지 못해 고함과 욕설로 표출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폭력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사연을 들어주고 보듬으며 분노의 분화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조커가 저지른 흉악 범죄도 쌓인 분노와 주변의 무관심이 불씨가 됐다. 우리 각자도 “공허하고, 외롭고, 상처받고, 불안하고, 위험한 것 같아도 분노를 막기 위한 훈련”을 지속하여야 한다. 성경 말씀, 역사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사람들의 어록. 명작의 한 구절을 암기하고 수시로 묵상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나도 지난번 아픔을 준 사람들에게 당장 전화라도 걸어 사과하고 용서를 빌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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