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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봉준호의 한국영화

 

 

 

 

 

한국영화는 봉준호 감독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되었다. 이미 영화계에서는 ‘봉준호만 신난다’는 말이 돌고 있었지만, 이번 아카데미상 4개 부문 수상은 불붙는 유전에 화염방사기를 들이대는 모양새다.

그의 영화를 본 관객들은 물론 영화계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놀랄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아카데미 주최 측이나 세계의 영화 관계자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던 듯 하다. 세계 유수의 각 언론들은 주요 뉴스로 소식을 전했고, SNS에서도 감탄과 축하의 메시지로 넘친다.한국영화가 아카데미 상을 향해 발걸음을 뗀 것은 오래지만, 수상을 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다기 보다는 그저 그러한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전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1962년 ‘사랑방손님과 어머니’가 출품되었지만 어떤 경로를 거쳤는지 정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한국영화의 아카데미 영화상 참가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선정위원회를 열어 참가후보작을 선정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매년 참가작을 정하기는 했지만 본선 후보에 선정된 경우는 없었다. ‘기생충’은 그런 과정을 모두 뛰어 넘은 채 본선 6개 부문 후보로 지명되었고, 6개 중 4 부문을 수상했으니 놀랍다는 표현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을 정도다.

1929년부터 시작한 아카데미 상은 일동의 자정 선언대회 같은 행사로 시작했다. 1920년대에 들어 미국 영화는 중요한 흥행상품으로 떠올랐다. 같은 무렵 뉴욕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미국영화는캘리포니아 지역으로 옮겨갔고, 허허벌판 같았던 헐리우드는 새로운 영화 중심지로 변모했다. 헐리우드에서 만든 영화들이 인기를 모으자 새로운 영화도시 헐리우드는 돈과 명예와 환락이 넘치는 소돔의 도시라는 비난도 함께 받았다. 난잡한 이야기로 미국인들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고 가난한 시민들의 지갑을 털어간다는 비난이 종교계와 학부모 단체들로부터 쏟아졌다. 여기에다 헐리우드 스타들과 관련된 스캔들과 범죄 소식들이 이어지면서 헐리우드를 향한 비난의 수위는 갈수록 높아졌고, 영화 보이콧 움직임까지 이어졌다.

여론의 부담을 느끼던 영화계는 자체 정화를 하겠다며 ‘헤이스 코드’라고 부르는 영화 검열 규정을 만들어 영화에서 보여 주어서는 안되는 요소들을 제시하는 것과 함께 건전한 영화를 골라 시상한다는 이벤트를 마련했다. 그것이 바로 아카데미 영화상의 등장이다.

아카데미 상은 미국영화를 대상으로 한 시상식이어서 다른 나라 영화들이 끼어들 틈이 없었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1930년대에 들어서 미국영화는 세계영화를 대표하는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제작 규모나 구성의 다양성 면에서 미국 영화의 경쟁 상대는 미국 영화 외에는 없었다. 프랑스나 영국, 일본 같은 데서 영화를 만들기는 했지만 규모에서 비교가 되지 않거나 외국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미국 관객들이 볼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초기 미국영화계에서 큰 손 역할을 했던 파라마운트, 20세기폭스, 워너브러더스, 콜롬비아 같은 영화사들은 지금도 대형영화사로 존재하고 있다.

미국영화만을 대상으로 하던 시상은 1947년부터 외국어영화에 대해 시상하기 시작했지만 특별상이나 명예상 성격이었다. 시상을 할 수도 있고, 그러지 않아도 되는 수준이었던 것을 1956년 제29회 때부터 외국어 영화상 부문을 정식으로 신설하고 시상을 시작했다. 올해부터 외국어영화상의 명칭을 아카데미 국제극영화상(Academy Award for Best International Feature Film)으로 바꾸었다. 외국영화도 주요 본상과 같은 레벨에 두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아카데미의 위상이나 파워가 예전 같지 않다던 지적이 나온 지는 오래지만, ‘기생충’과 봉준호 감독이 일으킨 파란은 그 분위기를 일거에 뒤집으며 역사적 문화 이벤트로 만들었다. 봉준호 감독에게는 축하를, 누구보다도 충격 받았을 박찬욱 감독에게는 위로 담은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모두가 한국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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