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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백]가시지 않은 상처

 

 

 

 

 

광주광역시 무등산 자락 망월동 공원묘지 입구 한쪽에 쇠로 긁어서 아무렇게나 쓴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 민박기념 표지석’이라는 조그마한 대리석이 흙과 수평으로 누워있었다. 사람들은 굳은 표정으로 사연을 알 수 없는 표지석을 밟고 들어갔다. 생겨서는 안 될 신군부의 선두에서 민주화를 부르짖는 광주시민들을 무참히 살해하도록 지시한 무소불위의 전두환.

1980년 5월, 광주 민주 항쟁을 진압하기 위해 군 헬리콥터에서 전일빌딩에 사격한 목격담을 당시 고 조비오 신부가 증언했다. 그러나 전두환은 그의 회고록에서 헬기 사격 목격이 거짓이라 주장하여 조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4월 27일 광주지방법원에 들어서던 그도 늙어 초라한 모습이었다. 당일 검찰 측은 재판과정에서 나온 헬리콥터 사격 목격자의 증언과 헬리콥터 사격에 의한 전일빌딩의 과학적인 탄흔을 위시한 2018년 국방부 헬리콥터 사격 조사위원회의 보고서를 제시하였음에도 그는 부인했다.

나는 광주시에서 살다 80년도 말에 경기도로 직장을 옮겼다. 당시 경기지역민은 광주 민주 항쟁의 진실을 왜곡하고 있었다. 지식인인 직장 상사마저 일게 지역의 불만을 표출한 폭동이라며 역정을 냈다. 외국에서 방영되었던 그때의 참상을 후에 국내 방송을 통해 보았으련만 진실을 외면했다. 하기야 지금도 왜곡하는 사람이 있다. 북한의 특수부대 6백여 명이 광주에 침투하여 시위를 주도했다며 사진에 광수 번호를 붙여 주장하던 이는 지목된 이들로부터 무고죄로 2억 원의 벌금형을 받자 그의 홈페이지를 삭제했다. 신군부 때 6백여 명이나 침투했다면 허수아비 같은 국방으로 막중한 임무를 소홀히 하여 국가 혼란을 초래케 했으니 엄중한 문책을 받아야 할 일이 아닌가.

80년 5월, 직장이 있는 광주 인근의 군 소재지에서 생활하던 때였다. 계엄군에 쫓긴 청년들이 트럭 위에서 “전두환 물러가라 계엄을 해제하라”를 외치며 나타났다. 지친 모습임에도 강한 의지가 살아 있었다. 나는 똑똑히 보았다. 그들은 폭도가 아니라 진정한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우리의 젊은이요 국민임을. 피로가 겹친 그들을 지역 유지들이 나서서 음식물과 음료수를 제공했다. 모여든 주민들은 그들을 부여안고 다독이며 마음을 합쳤다.

전국적으로 전두환 신군부에 대한 반대 시위가 퍼지자 광주에서도 전남대생들에 의해 시위가 있었다. 그 일로 공권력의 과도한 제재와 탄압을 받게 되자 금남로에서 시민과 고등학생까지 가득 모여 투쟁했다. 이미 투입되어있던 20기계화보병사단의 병력과 공수여단 등의 병력이 합세하여 시위대와 대치 중 살상을 가했다. 계엄군은 여고생의 가슴을 대검으로 찌르고, 임신 8개월의 임산부도 살해하는 잔인한 행동도 했다. 대한민국 군인이 전두환 일당의 명령을 받고 시민을 향해 저지른 무자비한 행위였다. 이에 시위대는 분개하여 경찰서에서 총을 탈취하여 대치했다.

무장 시위대가 대치하던 전남도청이 새벽에 계엄군의 총공세로 지옥이 되는 등 10일간 희생된 사망자는 165명, 부상자 3천139명과 행방불명자였다. 계엄군은 광주로 통하는 도로와 철도, 시외 전화선까지 봉쇄하고 살상행위는 숨긴 채, 김대중의 사주로 광주지역 불순분자들이 국가 전복을 목적으로 한 폭동이라는 거짓 보도를 하였다. 김대중은 그들로부터 이미 구속된 상태여서 관련이 없었다.

광주 민주화 항쟁 40주기다. 11공수여단 병력이 주남마을을 지나던 버스에 집중사격하여 18명 중 15명이 숨지고, 3명 중 2명은 상황실로 옮겨졌다가 귀찮게 왜 데려왔느냐는 작전보좌관의 말에 야산으로 끌고 가 사살하여 암매장한 비정함. 그뿐이랴. 병력이 주남마을에서 송정리 비행장으로 이동하다가 시위대에 총격을 가하자 부근에 있던 아이들이 놀라 달아나는 중이었다. 이를 어쩌랴. 꽃다운 초등학교 4학년 전재수 군이 벗겨진 검정 고무신을 뒤돌아 주워들려는 순간, 명중시켜 그 자리에서 숨지게 한 슬픔이 아물지 않았거늘, 가해자들은 아직도 나서지 않고 뉘우침도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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