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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백]문외한의 관람기

 

시간은 나의 생을 자꾸 갉아먹는다. 잠자리에 들어서 하루의 일이 정리되지 않아 뒤챌 적에 뜨악 뜨악 소리를 내는 벽시계는 어둠 속으로 수명을 자꾸만 끌고 간다. 시계가 없으면 시간관념이 덜할 터인데 금전을 들여 사다 놓고 생이 짧아지는 소리를 태연히 듣고 있으니 아직은 나이에 대한 의미를 따질 때가 안 되었나 보다. 생명도 없는 시곗바늘의 방향에 따라 분주히 움직이는 나의 생활이 실속을 차릴 때도 있지만, 대개는 안갯속을 허우적거리다가 빈손만 쥐고 만다.


어느 회화전 초대에 기꺼이 응했다. 그림에 문외한이라서 걸려있는 작품이 어마어마한 가치가 부여되었으리라 여기면서도 나와는 동떨어진 세계로 느껴진다. 그림 중에 새장 밖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새는 눈동자가 죽어있어서 날아갈 곳을 찾지 못하는 모습으로 보이고, 반원의 철제 위에서 꼬챙이에 꽂혀있는 생선 뼈의 조각은 주제인 「슬픈 잠」이 아닌 고철 그 자체로만 보인다.


꾀나 심각한 표정으로 감상하는 무리 속에서 나는 공간 속에 떠 있는 이방인이 되었다. 그림을 볼 줄 모르는 부끄러움보다는 현대에서 소외되는 지독한 외로움이다. 외로움을 감추며 휘적휘적 걷는데 붉게 타는 화폭 앞에 걸음이 멈추어졌다. 온통 붉은 바탕에 다섯 그루의 나무가 뒤쪽으로 휘어져 바람에 떨고 있다. 엄청난 나팔의 입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귀를 막고 있는 나상이 어쩌면 그리도 지금의 내 모습과 같은지. 자신보다 서너 배는 더 큰 나팔 앞에서 귀를 틀어막고 돌아앉아 있는 그는 무엇 때문에 감내하고 있는 것인가. 발아래에는 어둠의 빛이 널려 있고 하얀 꽃 두 송이, 그리고 정적이 흐르는데 간혹 문화인들이 흘리는 낮은 대화와 웃음소리가 잔잔하게 흐르고 있다.


정적을 쫓다가 화폭 안에 들어가 나만의 공간을 차지하고자 했다. 거추장스러운 옷을 하나하나 벗어 던지고 도깨비에 홀린 듯 나팔 안으로 들어가서 암흑의 세상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런데 엄청난 굉음이 그곳에서 울려오지 않는가. 굉음이 풍선처럼 커지더니 열 배 스무 배로 확대되었다. 살갗이 부풀리는 듯한 아픔은 머리를 짓이기는 고통에 비하면 약과다. 소리를 지르고 또 지르려는데 입속에만 머물러 가슴으로 삼킨다.


모두가 텅 비었다. 그렇다. 공간이다. 불볕이 내리쬐는 사막, 어디를 둘러보아도 모래, 또 모래뿐이고 살아있는 것은 오직 나 하나뿐인 곳이다. 공간은 안도 바깥도 없기에 구별할 필요도 없고 주위를 의식할 일도 없다. 그곳은 넓되 채워 넣을 필요가 없는 곳. 나는 잠시 시간을 망각하고 몸살을 앓는다.


‘천지창조’가 있는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은 신비로 가득하리라 여겼다. 젊은 나이에 무엄하게도 사전 지식을 외면하고 하늘과 땅이 생성되는 모습을 연상하며 들어서자 숨이 컥 막혔다. 천장에는 기하학적인 도형에 칸마다 이야기가 넘실거렸다. 창세기의 빛과 하늘, 새와 물고기, 동물과 사람을 만드는 과정을 역동적으로 나타내려면 세밀한 계획이 필요했을 것이다. 작가가 신의 경지에 이르지 않는 한 이런 세세한 구상을 할 수 있겠는가. 대홍수나 리비아의 무녀라든지 뱀, 그리고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지어 에덴동산을 쫓겨 가는 장면은 알 듯한데 나머지는 미로를 헤매는 격이었다. 모든 작품이 살아 움직였다. 이래서 미켈란젤로가 천재의 말을 듣는가. 천장 중앙의 ‘아담 창조’가 핵심이라니 저마다의 눈동자가 집중되었다. 이어폰에서 허리를 비틀고 온 힘을 쏟아붓는 조물주의 손가락 끝에서 최초 인간인 아담이 탄생하는 장면이라며 톤을 올렸다.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을 모방하여 아담을 만들었다 하였거늘, 하나님이 백발의 할아버지라니. 잡스러운 생각에 젖어 있는 나와는 반대로 관광객은 인파에 밀려 이동하면서도 환희에 들떴다. 의식적으로 몽롱한 상태를 유지하였다. 그때 두 손가락 사이에서 찌르르하고 오로라 같은 선이 흐르지 않던가.


나는 예술과는 거리가 멀고 종교도 없다. 그냥 이론을 거스르고 보이는 데로 취하고 느낄 뿐이다. 현재의 시간이 내일도 같이 하기를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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