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통상부가 김선일(33)씨의 피랍사실을 여러 경로를 통해 사전에 알고도 이를 묵살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각종 자료와 정황이 속속 제기되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여야 정치권이 외교부 사전인지 의혹에 대한 청문회 추진을 적극 검토키로 했다.
AP 텔레비전 뉴스(APTN)는 지난 6월 초 이라크에서 피랍된 가나무역 직원 김씨가 나오는 비디오테이프가 배달돼 6월초 AP통신을 통해 김씨의 신원 및 사실여부를 외교통상부에 문의했다고 24일 밝혔다.
이 테이프에는 김씨가 담담한 표정으로 자신의 나이를 밝히면서 ‘미국이 싫다’고 말하는 모습이 담겨 있어 이 시점부터 외교력이 가동됐다면 김씨를 살릴 수도 있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외교부 본부에 문의했다는 것인지, 주이라크 대사관에 문의했다는 것인지 사실관계를 AP통신에 문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테이프가 만약 외교부의 묵살 속에서 방치됐다면 자국민 보호를 우선 순위로 둬야할 외교부로선 업무태만과 무신경을 지적받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김씨가 지난달 31일 실종되고 김씨의 고용주인 김천호 사장이 다음날인 6월1일 김씨와 전화연락이 두절되자 교통사고를 당한 줄 알고 주변 지역 경찰서와 병원 등지를 샅샅이 뒤졌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현지 공관의 교민안전대책에 구멍이 뚫렸음을 보여줬다.
사건이 알려진 직후 외교부는 전화 통화와 e-메일을 통해 교민들의 안전을 점검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김씨 피살 때까지 3주가 넘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현지 공관에서는 김씨의 실종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
또 김천호 사장이 사건 발생 이후 이달 1일, 7일, 10일, 11일 등 네 차례에 걸쳐 현지 대사관을 방문한 것도 의문으로 남는 대목이다.
김 사장이 20일 군납 원청업체인 AAFES와 계약문제 협의차 모술지역을 방문하는 등 사업으로 분주한 김 사장이 왜 이렇게 자주 공관을 방문했냐는 것이다.
방문 과정에서 혹시 김씨의 실종을 현지공관에 보고하지 않았겠느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여야 정치권이 24일 김씨 피랍과 관련 청문회를 추진하는 한편 일부 야당 의원들은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에 대한 인책론을 제기하고 나서 주목된다.
한나라당 김덕룡 원내대표는 이날 상임운영위 회의에서 APTN이 이달 초 비디오 테이프를 입수해 외교부에 사실 확인을 문의했다는 AP 통신 보도와 관련해 “외교안보 현안 청문회 추진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재발 방지를 위해 책임도 따라야 한다”며 반 장관 등에 대한 인책론을 제기했다.
우리당도 이날 오전 신기남 당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지도부 회의를 갖고 “외교부의 사전인지 여부 등 국민적 의혹에 대해 당 차원의 진상 규명 작업을 벌인 뒤 필요하면 통외통위 차원의 청문회를 진행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정리했다”고 임종석 대변인이 밝혔다.
특히 신 의장은 외교부 사전인지설 등 김씨 피랍 관련 의혹 규명을 위한 당 차원의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고 유선호 의원을 단장으로 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