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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선물,  가난한 날의 부부에게

 

어느 해 시월의 마지막 날 나와 아내는 무작정 공단에 와서 신혼살림을 차렸다. 3층 연립주택 반지하 단칸방이었다. 바로 앞집에서는 걸핏하면 부부 싸움이 벌어졌다. ‘살림살이가 깨지는 소리’ ‘악다구니 소리’ ‘울음소리’가 들썩거려 밤잠을 깨기 일쑤였다. 여름 날 선풍기 하나 겨우 숨을 헐떡거리며 돌아가는 지하방은 열대 정글처럼 습기가 많아 꿉꿉했고 하수구 냄새는 역류했고 숨이 턱턱 막혔다.


나는 철판을 굽히고 접는 공장에 다녔다. 그 회사 다니기 전에는 철판을 자르는 회사에 다니기도 했고 프레스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회사는 달라졌지만 작업복과 안전화는 바뀌지 않았다. 매달 받아든 누런 월급봉투의 무게는 병아리 눈물만큼 더해졌다. 아내 또한 옆 공단에서 전자부품공장에 다녔다. 둘은 부지런히 일했지만 예금통장의 잔고는 쉽게 올라가지 않았다. 일은 힘들었고 공장에서 돌아오면 쓰러져 자기에 바빴다. 하루 종일 전자부품 검사를 하고 돌아온 아내의 얼굴은 늘 창백했다.


그래도 한 달에 딱 한번 ‘수고하셨습니다’라고 겉봉투에 적힌 월급봉투를 아내에게 내밀 때는 내 얼굴이 밝았고 봉투를 받아드는 아내의 미소가 환했다. 그날은 외식을 하고 서점에 가서 책도 사고 영화를 한편 보기도 했다. 그러나 부부가 벌어온 월급봉투는 금세 어디론가 휙 사라져 버렸다. 아이를 낳고 집을 장만하자는 부부의 꿈은 저 멀리 있었다.


아내의 생일이 다가왔다. 나는 집에서 역까지 네 정거장을 걸어가기로 했다. 역에서는 공장까지 가는 통근버스가 있었다. 그렇게 걸어 다니면서 버스비를 모았다. 겨울이 왔고 눈이 내렸다. 버스비를 아껴 모은 돈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나는 오고가면서 보아둔 시장의 좌판에서 머리핀을 하나 샀다. 나무로 만든 머리핀이었다. 아내의 생일날 아침에 미역국을 끓여주고 머리핀을 선물했다. 그것은 내가 아내에게 준 유일한 선물이었다.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나는 감옥으로 잡혀갔다. 과거 노동운동 조직 활동을 했던 경력이 있어 재판을 받아야 했다. 지루한 재판 끝에 형을 받고 이감을 갔다. 그 사이 홀로 남겨진 아내는 혼자서 아이를 낳고 키웠다. 아내가 아이를 안고 면회를 왔다. 아이는 입술을 오물오물 거렸고 조막만한 손을 나에게 뻗어보였다. 아이는 천사 같았다. 나는 감옥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아내의 머리에는 내가 선물한 머리핀이 꽂혀있었다. 아내는 부자의 첫 만남을 지켜보며 웃고 있었다.


그 후로 오랫동안 가난한 부부의 삶은 팍팍했다. 위기도 찾아왔고 서로에게 아픈 비수로 상처를 주기도 했다. 가난한 날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그렇지 않은가? 자주 이삿짐을 싸고 풀었다. 이사할 때마다 짐을 버리고 줄였다. 그래도 아내의 머리핀은 바뀌지 않았다. 손때가 묻어 번들거리는 싸구려 머리핀이 되었지만 아내는 그 머리핀을 버리지 않았다. 머리핀은 아내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선물은 주는 사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을 받는 사람이 그 이름을 불러줘야 비로소 선물이 된다.”


가난한 날을 힘들게 그러나 아름답게 살아온 부부들에게는 삶을 견딜 수 있도록 꽉 잡아준 머리핀과 같은 선물이 있었으리라. 나는 기억 속에 꽂혀있는 머리핀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선물하고 싶다. 견뎌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