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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시해한 낭인 깡패 칭송하는 국사편찬위원회

국사편찬위원회, 1991~2003년 ‘한국사’ 52권 출간
가야편에서 ‘아유카이 후사노신’ 학자 연구성과 극찬

명성황후 시해 가담한 낭인 깡패가 쓴 역사서엔
임나일본부가 한반도 남부 전역을 지배했다고 주장
일본서기의 탁순, 달구벌(대구)이라고 지명 비정

 

이덕일의  역사를 말하다 <5>
앚임나일본부설은 극복되었나 ④

 

임나는 가야인가?


가야사 전공자들은 “우리 학계는 임나일본부설을 극복했다”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운다. 그런데 ‘임나일본부설’을 ‘극복’했다고 말하려면 ‘임나일본부설’의 핵심사항을 제시한 후 그 내용들과 자신들의 견해가 다름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


임나일본부설이란 무엇인가? 일본에서 가장 방대한 ‘일본사대사전(전7권)’에서 ‘임나일본부’를 찾아보자. 이 사전의 ‘색인’은 임나일본부에 대해서 2권과 6권을 각각 찾아보라고 안내하고 있다. 6권을 찾아보니 ‘임나일본부’라는 제목의 항목이 나온다. 그런데 2권을 찾아보니 ‘김해가라(金海加羅)’가 나온다. 임나일본부와 김해가라, 즉 금관가야가 같다는 것이다. 남한 강단사학자들이 “임나일본부설을 극복했다”라고 말하려면 “가야는 임나가 아니다”라고 말해야 하는데, 총론으로는 “임나일본부설을 극복했다”고 말하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어김없이 ‘임나는 가야다’라는 ‘임나=가야설’을 주장한다. “나는 한국인이다”라고 말하면서 내미는 여권은 일본여권을 내미는 것이다.

 

 

아유카이 후사노신은 위대한 학자?


대한민국 국사편찬위원회는 1991년부터 2003년까지 모두 52권에 달하는 ‘한국사’를 출간했다. 북한에서 1979년부터 1983년까지 33권에 달하는 ‘조선전사’를 간행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사업으로 진행된 간행사업이었다. 남한 강단사학계의 정설 내지는 통설을 서술한 것인데, ‘한국사’ 7권이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로서 가야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가야의 정치·사회사 부분은 두 학자가 썼다. 한 명은 남한 언론들이 미스터 가야사라고 부르는 홍익대 교수 김태식이고, 다른 한명은 일왕을 호칭할 때는 고대의 일왕이든 현대의 일왕이든 반드시 ‘천황’이라고 높이는 고려대 명예교수 김현구가 썼다. 미스터 가야사 김태식은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에서 ‘가야사 연구의 전통’에 대해 서술하다가 느닷없이 ‘임나 문제의 제학설’로 넘어갔다. 그에게 가야사는 곧 임나사인 것이다. 그 다음이 ‘가야관계의 제학설’로서 임나를 먼저 쓰고 가야를 나중에 썼다. 가야사보다 임나사가 먼저라는 것이다. ‘임나 문제의 제학설’ 중에 아유카이 후사노신이라는 학자(?)에 대해서 이렇게 극찬했다.

 

“점패방지진(鮎貝房之進, 아유카이 후사노신)은 방대한 문헌고증을 통하여 임나의 지명 비정 범위를 경남·경북 및 충남·전남까지 확장시켜서, 임나는 경주지방 부근과 부여·공주일대를 제외한 한반도 남부 전역을 가리키게 되었다. 그것은 ‘일본서기’에 왜의 한반도내 지배 영역이었다고 상정된  ‘임나’의 범위를 넓혀 잡기 위해 그가 문헌 비교 및 언어학적 추단을 거듭함으로써 얻어진 연구결과였다고 여겨진다(277쪽)”

 

김태식은 아유카이 후사노신이 ‘문헌 비교 및 언어학적 추단을 거듭해서’ 큰 연구성과를 얻은 대학자로 극찬했다. 그 연구성과를 김태식은 임나가 ‘경남·경북·충남·전남’을 모두 차지했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라고 썼다. 즉 임나일본부가 신라 수도였던 경주 일대와 백제 수도였던 부여·공주 일대를 제외한 ‘한반도 남부 전역’을 지배했다는 것이 아유카이 후사노신의 연구성과라는 뜻이다.

 

 

명성황후 시해한 낭인 깡패


아유카이 후사노신은 일본 제국주의가 군국주의로 치닫던 1931년부터 1938년까지 경성에서 ‘잡고(雜攷)’라는 잡지를 간행했는데, 김태식이 아유카이 후사노신을 극찬한 내용은 1937년에 발표한 ‘일본서기 조선관계 지명 고(攷)’의 내용을 뜻하는 것이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지명은 한국에서 찾아야 하는 것처럼 ‘일본서기’에 나오는 지명은 일본에서 찾아야 하는데, 일본 극우파들과 남한 강단사학자들은 이상하게도 ‘일본서기’에 나오는 내용을 한국에서 찾는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아유카이 후사노신(1864~1946)이라는 인물 그 자체이다. 아유카이 카이엔(鮎貝槐園)으로도 불리는 아유카이 후사노신은 낭인 깡패다. 일본에서는 일본의 전통 시가인 화가(和家)를 잘 부른다고 해서 가인(歌人)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이 아유카이 후사노신은 고종 32년(1895)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낭인 깡패다. 이 낭인 깡패가 쓴 역사서가 ‘일본서기 조선지명고’인데, 이 책에서 아유카이는 신공 49년(369년)에 야마토왜가 충청도와 전라도, 제주도를 백제에게 주었다고 우겼다. 한 마디로 백제라는 나라는 야마토왜가 만들어주었다는 것이다. 이런 낭인 깡패의 황당한 논리가 대한민국 국사편찬위원회의 눈에는 “방대한 문헌고증”과 “문헌 비교 및 언어학적 추단을 거듭”해서 얻은 빛나는 연구결과로 보이는 것이다.

 

가인 깡패들을 빼돌린 일본


이 연재의 첫 회에서 내가 국사편찬위원회 사무국장 신석호의 재임기간을 ‘국사편찬위원회사(1990)’에서 ‘1929년 4월~1961년 1월 21일’이라고 적어 놓은 것이 실수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사편찬위원회는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를 계승했다는 사고가 드러난 것이라고 한 것이 과장이 아닌 것이다.

 

아유카이 후사노신은 한국으로 건너 와 을미의숙(乙未義塾)에 일본어 교사로 근무하면서 오사노 텟칸(與謝野鐵幹 : 1873~1935) 등을 끌어들이는데, 오사노 뎃칸은 아유카이 후사노신보다 유명한 가인 깡패로서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에 직접 가담했다(柴太一郞, ‘明治の兄弟’) 일본인 낭인 깡패들이 국모를 시해한 이 사건은 국내외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일본인들이 조선의 국모를 시해한 것이 밝혀질 경우 국내외로 큰 타격을 입을 것을 우려한 일본은 1876년의 ‘강화도조약’에서 일본인의 범죄는 자국에서 처리한다는 구절을 근거삼아 이들을 히로시마 지방검찰청으로 빼돌렸다. ‘강화도조약’은 개항장에서 일본인들이 일으킨 범죄만 일본에서 처리하기로 되어 있었고, 궁궐에 난입해 국모를 살해한 사건은 여기에 적용할 수 없었지만 일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낭인 깡패들은 “자신들은 그때 목포에 있었다”고 우겼고, 일본 검찰은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아유카이는 러일전쟁 때 공을 세워 훈6등의 훈장을 타고, 1916년에는 조선총독부 박물관의 협의원이 되었다.

 

 

언어학적 추단?


김태식과 국사편찬위원회가 극찬한 아유카이 후사노신의 ‘언어학적 추단’이 무엇인지 추적해보자.

 

국립 중앙박물관은 2019년 12월 가야특별전인 ‘가야본성’ 전시회의 연표에서 “369년 가야 7국(비사벌, 남가라, 탁국, 안라, 다라, 탁순, 가라) 백제·왜 연합의 공격을 받음(서기)”이라고 썼다.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가야 6국(금관가야·아라가야·고령가야·대가야·성산가야·소가야)이 있었다고 썼는데, 이 가야 6국은 모두 사라지고 ‘일본서기’에만 나오는 7국으로 대체한 것이다. 이중 ‘일본서기’의 탁순국에 대해 아유카이 후사노신은 경상북도 대구로 비정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삼국사기’ ‘지리지’를 근거로 들었다. ‘삼국사기’ ‘지리지’는 대구현에 대해 “본래 달구화(達句火)현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대구로) 고쳤다”고 말하고 있다. 아유카이 후사노신은 ‘삼국사기’ 첨해이사금 15년(261) 2월에 “달벌성(達伐城)을 쌓고 나마(奈麻) 극종(克宗)을 성주로 삼았다”는 구절도 탁순이 대구라는 증거로 끌어들였다. 아유카이는 “지금 경상북도 대구는 신라에서는 達句火(tal kybol), 達伐(tal bol) 등으로 기록했다”면서 卓의 조선음이 탁(tak)이고, 일본음은 다쿠(タク)이며, 達의 조선음은 달(tal)이고, 일본음은 닷(タッ)이므로 탁순이 달구벌, 즉 대구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탁(卓)자와 달(達)자가 발음이 비슷하니 탁순이 달구벌, 즉 대구라는 것이다. 일본 극우파들과 남한 강단사학자들 외에는 수긍할 수 없는 논리다.

 

일본인들의 지명비정은 억지라는 북한학자


이런 ‘언어학적 추단’에 대해 북한 학계는 어떤 태도를 갖고 있을까? 북한 학자 김석형은 1963년 ‘삼한 삼국의 일본열도 분국설’이라는 논문을 써서 ‘임나는 가야가 아니라 가야가 일본 열도에 진출해서 세운 분국(分國)이자 소국’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학자들의 지명 비정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이와 같은 일본학자들의 비정은 억지를 면치 못한다. 당시의 야마또 군대가 경상, 전라 두 도를 무인지경으로 돌아쳤다고 전제하고 그 일대 고지명에 비슷한 글자가 여러 글자 중에서 하나라도 있으면 주어맞춘 것이 불과하다(김석형, ‘초기조일관계사’)”

 

평범한 국민의 눈으로 볼 때 탁순의 ‘탁’자와 달구벌의 ‘달’자의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에 탁순이 대구라는 아유카이 후사노신의 주장이나 이를 탁월한 언어학적 추단으로 추켜세우는 국사편찬위원회의 논리와 ‘그 일대 고지명 중에서 비슷한 글자가 하나라도 있으면 주어맞춘 것에 불과하다’는 김석형의 논리 중에 어느 것이 이치에 맞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글=이덕일 (사)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사진=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