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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칼럼]그를 보내는 우리의 자세

 

검찰사건사무규칙 제69조 제3항 제4호는 피의자가 사망한 경우 ‘공소권 없음’ 결정을 하도록 한다.

 

공소권 없음은 형사법이 피의자의 죽음을 규정하는 방식이다. 공소권이란 검사가 법원에 공소(公訴)를 제기할 수 있는 권(權)리다. 공소를 제기함으로써 비로소 검사는 피고인의 행위가 범죄에 해당함을 입증하여 처벌을 구할 수 있게 된다. 공소권 없음은 이처럼 검사가 피고인을 법정에서 세워 유죄를 주장할 수 있는 권리 자체가 없다는 뜻이다. 형사소송법 제195조는 검사는 범죄의 혐의 있다고 판단될 때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를 수사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범죄사실은 범인의 행위다. 증거는 행위가 있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요소다. 결국 수사의 핵심은 범인이다. 그렇기에 범인이 없으면 수사 또한 불가능하다. 범인이 사망하면 수사의 대상이 사라지고 공소권은 없어지는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9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루 전인 8일에는 전 비서에 의해 강제추행 등 혐의로 경찰에 피소되었다고 한다. 그가 사망하자 경찰은 곧 해당 사건을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하였다고 발표했다. 피혐의자가 사망하여 존재하지 않으니 당연한 조치다.


서울시는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그의 시신이 안치된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과 각 지역에 설치된 시민장례식장은 조문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수많은 시민들이 그의 떠남을 슬퍼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시민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의 떠남을 애도하면서도, 인권변호사와 3선 서울시장으로서 그의 발자취는 인정하면서도 피소 혐의에 대해서는 철저히 규명하여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몇몇 정치인들은 애도는 하지만 조문을 갈 수는 없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그가 죽었더라도 성추행 혐의는 철저히 조사 되어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한다. 더 나아가 서울특별시장(葬)이라는 장례 형태에 대해 “성추행 혐의자의 장례를 시민들의 세금으로 치러야 하느냐”며 원색적 비난을 하는 이들도 있다. 심지어 그의 죽음이 피해자에 대한 2차가해라는 장도 있다.


박원순은 서울시장을 역임한 정치인이었다. 공인이다. 공인은 공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이 있다. 그렇기에 그의 성추행 혐의에 대해서는 당연히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더 이상 이 세상에 그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수사기관의 조사와 법원의 판단이라는 절차를 통한 평가는 불가능하다. 이제 그의 평가는 우리 사회의 책임이다. 인권변호사와 시민운동가 그리고 서울시장으로 그가 우리 사회에 남긴 족적은 충분히 우리 사회에 그에 대한 평가의 의무를 요구하고도 남을 것다.


다만 그에 대한 평가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철저히 이루어져야 한다. 애도는 하나 조문은 갈 수 없다는 또는 그의 죽음과 상관없이 진실을 밝히기 위한 철저한 조사는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 역시 그를 평가하는 우리 사회의 기나긴 여정 중 하나일 것이다. 그는 수십 년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로 살아왔다. 민선 최초 3선 서울시장으로 혁신 행정을 이어오고 있었다. 이런 그가 성추행 혐의로 피소되었다는, 피소 하루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우리 사회에 던져준 충격은 우리가 기억하는 어떠한 언어로 표현한다고 해도 부족할 정도일 것이다. 역사가 그를 어떻게 평가하든 지난 9일부터 며칠 동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충격은 그가 직접 우리에게 던져준 것이다.

 

수사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도록 하여 모든 평가를 온전히 우리 사회의 몫으로 던져준 것 역시 그의 선택이다. 이 모든 것을 포함해 이젠 그를 평가해야 할 때다. 그렇지 않고 공만을 또는 과만을 강조한다면 이는 박원순이라는 걸출한 인물을 잃은 한국사회에 또 다른 손실일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은 일단 그를 편안하게 보내주어야 하지 않을까? 분양소의 수많은 시민 조문객들만으로도 그의 마지막 길을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치를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