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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휘의 시시비비] ‘태영호’ 딜레마

  • 안휘
  • 등록 2020.07.29 06:25:19
  • 16면

 

“태영호 의원이 사상 전향 여부를 저한테 다시 물어보는 것은 아직 남쪽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국회에서 펼쳐진 통일부 장관후보자 인사청문회장에서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의 불편한 ‘사상 전향’ 질문 공세를 점잖게 받아넘긴 이인영 통일부 장관의 답변은 백미(白眉)였다. 태 의원의 거듭된 질문에 “그 당시에도 주체사상 신봉자가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다”라고 못 박은 답변도 시원했다.

 

태영호는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탈북 고위급 인사다. 논란이 있지만, 태영호의 부친은 김일성의 전령병 활동 경력을 가진 항일 빨치산 1세대 태병렬 인민군 대장이고, 부인 오혜선 씨도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로서 노동당 군사부장이었던 오백룡의 일가로 알려졌다. 탈북 당시 태영호는 주영(駐英) 북한 대사관에서 10년간이나 일한 서열 2위의 베테랑 외교관이었다.

 

태영호의 탈북 동기에 ‘북한 체제에 대한 회의감’이 빠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류경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 사건 이후 25세 이상 해외 거주 외교관 자녀의 평양 소환령이 떨어져 맏아들이 평양에 돌아가야 할 상황에 놓인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는 설명이 가장 인간적이다. 볼모 없이 두 아들을 데리고 있었던 것이 결심을 가능하게 한 조건이었을 것이다. 아내와 논의한 끝에 나온 결론이 바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탈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연을 다니고, 책을 발간해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일은 그가 마땅히 해야 할 중요한 과업일 수 있다. 운명적으로 북한을 상대해야 하는 남한에 소중한 정보를 제공하고 정확한 사실과 분석에 근거한 좋은 대북 정책 마련에 그가 기여할 수 있는 공간은 상당할 것이다. 그가 유명세를 발판으로 통합당의 지역구 후보로 나서서 국회에 입성한 일 또한 새로운 기록이다.

 

그러나 몇 달 전 “김 위원장 사망을 99% 확신한다”고 밝혔던 통합당 지성호 의원과 함께 ‘김정은 유고설’을 주장해 결과적으로 망신을 당한 일은 치명적인 한계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뭔가 앞서서 남다른 예측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빚어낸 참사였다. 그들에 대한 보편적 평가는 본의 아니게 세계와 우리 국민의 탈북민에 대한 인식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태 의원이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낯선 ‘사상 검증 공세’를 벌인 것은 또 하나의 헛발질이다. 왜 저럴까, 새삼 짚어보니 그가 남한 땅을 밟은 것은 고작 만 4년밖에 되지 않았다. 말하자면 그가 우리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분야에 대해 직접 경험을 한 시간은 짧고도 짧은 것이다. 청문회장에서 그가 사용한 용어, 행태, 논리, 집요함 등 모든 것은 우리 문화가 아니다. 영국에서 살았다지만 그는 아직 뼛속 깊이 북조선 사람이다.

 

그를 감싸고 있는 보수정치세력이 “통일부 장관에 대한 사상 검증은 잘못이 없다”며 그를 향해 “잘 했다”고 두둔하는 것은, 고약한 ‘편 가르기’ 습성은 길러줄망정 영양이 되지는 못한다. 초선 국회의원이 대놓고 강퍅한 언어로 상대방을 비판하고 몰아붙이는 정치문화부터 배우는 일은 비극이다. 태영호가 배우고 익혀야 할 ‘바른 정치’는 더욱 엄중하다.

 

국회의원 태영호는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태 의원이 이인영 통일부 장관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한 질의 내용을 두고 청와대 선임행정관 출신인 문정복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페이스북에 “북에서 대접받고 살다가 도피한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니다”라면서 “변절자의 발악으로 보였다”고 맹폭하는 글을 한때 올렸는데,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변절’의 대상과 주체에 대한 숙고 없는 이런 살 찬 막말 비난은 위험하다.

 

이인영 장관의 충고처럼, 태영호 의원은 ‘남쪽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를 더욱 높이고, 정서에 어긋나는 언행을 삼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태영호 자신의 딜레마와 바라보는 우리 국민의 딜레마를 줄여나가는 방법은 그 자신의 철저한 성찰과 정치권을 비롯한 국민의 따뜻한 표용밖에 길이 없을 것이다. 북한의 최고급 외교관이었던 태영호가 더욱 건강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성장해 남북의 적대는 물론, 좌우로 갈라져 죽기 살기 청백전을 벌이는 이 나라 정치권 고질병을 치유하는 착한 해결사가 돼가기를 기대한다.

 

3만3500여 탈북민들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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