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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소리를 걸다'…임순국 소리국악기 악기장

성남 유일의 전통악기 공방 운영

 

무더운 여름날 성남의 한 공방에서 달굴 대로 달군 900도나 되는 인두로 나무를 지지고, 연신 대패질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아교풀을 끓여 나무를 붙이고 줄을 매는 작업을 통해 나무에 소리를 건다.


성남 유일의 전통악기장 임순국(51·사진)씨다.


“아직도 나무만 보면 가슴이 설렌다”는 그는 현악기 위주의 악기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장인이다.

 

그 중에서도 주로 가야금, 거문고, 아쟁 등을 제작하고 있는 임 악기장은 가야금, 거문고, 해금, 아쟁, 대금 등 30여 가지나 되는 우리나라 전통악기들을 만들 수 있고, 연주할 수 있다. 


그가 국악기와 인연을 맺은 것은 중학교 때부터다.

 

“중학교 때 국악부 ‘전통문화반’에서 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전 단소를 배웠어요. 그런데 그 동아리에서 악기들이 망가지면 그걸 제가 다 고쳤거든요.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네가 그쪽에 관심을 가지고 또 재주도 있는 것 같은데 아예 그쪽 공부를 해보면 어떻겠냐?’라고 추천해주셔서 그때부터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죠.”


손재주를 알아본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임 악기장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곧장 전통악기 제작사인 ‘민속국악사’에 들어가 제작 기술을 본격적으로 배우게 됐다. 민속국악사에서 10년의 수련 과정을 거친 그는 2000년 고향인 성남에 ‘소리국악기’의 문을 열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대목장(大木匠)이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께서 한옥을 짓는 모습을 보고 자라 나무와 친했고, 손재주도 물려받은 것 같아요. 그리고 악기를 다룰 수 있어야 소리가 좋은지 나쁜지, 현줄(絃줄·현악기 낱낱의 줄)이 제대로 조율됐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8년 동안 직접 말린 오동나무의 정성


아무래도 가장 많이 들어본 국악기 하면 가야금이다. 가야금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재료는 뭐니뭐니해도 상판의 오동나무다. 남원, 전주, 광주 등지에서 난 오동나무는 재단 후 경기도 이천과 전북 장수 등지에서 말린다. 


이 때 이리저리 뒤집어서 잘 마르도록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말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5년에서 8년. 잘 마른 오동나무는 치수에 맞게 다시 재단을 거친 후에 가장 중요한 과정인 대패질을 하게 된다. 


이 대패질은 그냥 모양만 내는 것이 아니라 음을 잡는 중요한 과정이라 임 악기장이 전체 작업 중 가장 신중을 기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늘 어렵게만 느껴진다. 상판은 인두질로 검은 색을 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여기에 울림과 음폭을 잘 받아줄 밤나무로 된 하판을 붙이면 울림통이 그럴듯한 모양새를 낸다.

 

 

"대량생산은 죽은 나무통에 불과…"


그가 아쉬워하는 점은 악기의 대량생산이다. 요즘 나오는 전통악기 중에는 찍어내듯이 만들어낸 것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임 악기장은 “악기를 보면 생김새가 조금 날카롭고, 깊은 소리가 나지 않는 것 같다. 대량생산은 죽은 나무통에 불과하다”고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대기업에서 국악기 대량생산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실패로 끝났다. 오동나무를 손질하는 과정에서 나무별 재질에 따라 음을 잡기 위한 대패 손질 정도가 달라야 하는데 기계공정은 그것이 어려워 음을 재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정성을 들여 악기를 만드는 임 악기장은 나무만 봐도 소리를 알 정도다. 나무를 만지고 두들겨보면 ‘어, 저 나무는 소리가 잘 날 것 같은데!’ 하는 느낌이 온다는 것.

 

“좋은 나무가 훌륭한 악기장을 만나야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악기로 재탄생됩니다.”

 

 

좋은 나무가 장인을 만났을 때…


그동안 임순국 악기장은 좋은 나무를 구하기 위해 참 많이 돌아다녔다. 나무를 찾아 직접 벌목도 했다. 좋은 오동나무가 나왔다고 하면 위치나 거리쯤은 문제도 되지 않았다.


“나무는 최소한 5년 이상 건조해요. 나무 한 그루에서 악기가 2~3개밖에 안 나오는데 그중에서 딱 하나 건진다”고 설명한 그는 “완성된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가장 행복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임 악기장은 “숙성이 잘된 나무들은 울림이 굉장히 좋아 당글당글한 소리가 난다. 특히 나중에 대패질 했을 때 음이 아주 잘 난다”고 말한 뒤 “오동은 30년 이상 적박한 돌산이나 산비탈에서 자란 것이 좋고, 나이테가 곱고 촘촘한 것이 좋은 반면, 나이테가 굵은 것은 웃자란 것이라 퍼석퍼석해 악기 재료로는 쓸 수 없다”고 설명했다.  


좋은 소리를 내는 악기를 만들어내려면 좋은 재료(나무)를 만나야 하고 건조를 잘 시켜야 한다. 나무는 노천에서 눈·비를맞으며 3년 이상은 말려야 한다. 습기를 적게 먹는 오동나무는 본래도 단단한 편이지만 이처럼 수년간 변덕스런 사계절을 견뎌야 비로써 악기로 거듭날 수 있다. 


이후 건조 과정을 거치며 악기로 쓸 수 있는 나무와 못 쓰는 나무로 나뉜다. 비틀어질 나무는 비틀어지고, 썩을 나무는 썩어서 소리내기에 적당한 나무만 남게 된다. 

 

 

숙련된 장인의 손길이 명품 악기를 만든다


숙련된 장인이 수없는 대패질로 다듬어야 하는 것이 울림통이다. 700~900도까지 뜨겁게 달군 인두로 오동나무 울림통 표면을 지지는 낙동 과정은 나무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가야금 상판은 오동나무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상판은 반드시 달군 인두로 지지는 낙동 과정을 거쳐야 해요. 나무결 본연의 무늬를 찾아주고 진을 제거함으로써 표피도 강해지고 혹시라도 남아있을 해충 같은 것들도 낙동 작업을 거치면서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임순국 악기장은 모든 과정 재료 하나도 전통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최고의 가야금을 만드는 최적의 방법은 결국 전통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악기는 줄이 소리를 낸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소리를 좌우하는 것은 바로 울림통이다”는 임순국 악기장의 말처럼 사실 국악기는 제작기법에 대한 자료가 별로 없다. 그래서 자신만의 경험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나무마다 특성이 있기에 데이터를 만들기가 굉장히 어렵기 때문이다. 

 

 

혼(魂)을 담는 장인(匠人)이 되고픈 악기장(樂器匠)


임순국 악기장은 “나무가 좋고, 소리가 좋고, 악기가 좋아서 이 일을 한다. 좋아해야 할 수 있는 일이고, 장인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에게 좋은 악기의 조건을 물었다.


그러자 그는 서슴없이 “한 가지가 아니라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다”면서 “첫째로는 나무가 정말 중요하고 둘째로는 악기를 만드는 장인의 기술력이 중요하며 셋째로는 완성된 악기가 얼마나 훌륭한 연주자를 만나느냐가 중요하다. 이 세 가지가 맞아야 정말 좋은 악기다”라고 설명한다.


가야금 연주자들 사이에서 임순국 악기장이 만든 가야금은 “처음에는 약간 무게감이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맑고 투명한 소리가 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저에게 있어 악기란 곧 제 마음이다. 악기는 그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소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기란 마음이다”라고 정의한다.


그의 바람은 별 게 없다.


“우리 국악기가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전통악기로서 학생들이 많이 배우고 국가적으로도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고, 활성화 노력에 제도적으로 지원을 더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 국악기도 세계적인 악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현재 그는 미니어처 블루투스 가야금도 만들고 있다. 해외에 우리나라 전통악기를 알리기 위해 선물용으로 만들었다. 

 

한편, 한국전통민속공예협회 상임이사를 맡고 있기도 한 임 악기장은 2016년에 개최된 ‘제46회 대한민국공예품대전’에서 총 437종 출품작 가운데 유일하게 국악기로 입상했으며, 이외에도 전국공예 및 차·도구 공모대전 금상, 전국 모란민속공예대전 특선·입선, 경기도 공예품대전 동상·특선·입선 등을 수상해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또 청와대 사랑채 시연(試演), 개인전도 여러 차례 개최하기도 했다. 


임순국 소리국악기 제작연구원에서는 단소 및 국악기 만들기 체험 교실도 운영하고 있다. 학생 및 일반인 모두 가능하며 참여 신청은 전화로 문의하면 된다.

 

[ 경기신문 / 성남 = 진정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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