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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스타의 스타트랙] 불편함과의 균형

  • 손스타
  • 등록 2020.08.24 06:11:38
  • 인천 1면

 

며칠 전 비도 내리고 해서 방 정리를 하다가 대학 시절의 노트를 하나 발견했다. 당시 나는 시를 써보겠다고 항상 가방 안에 작은 노트를 가지고 다니곤 했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치기 어리고 낯 뜨거운 글이 많았지만, 덕분에 즐겁게 페이지를 넘겨보았다.

 

그 노트에는 시 이외에도 내가 만났던 주변인들과의 대화와 그때의 감정을 적어둔 글도 간간이 보였는데, 피 끓는 청춘의 시기였던 만큼 연애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많았다. 우습게도 그 시절의 우리는 다들 비슷한 입장이었음에도, 누군가를 상담해줄 때면 연애 전문가로 빙의해 자신만의 철학을 풀어놓곤 했다.

 

노트 중간쯤의 짧은 글에서 오래된 연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당시 수년간의 연애로 권태가 온 친구와 나눈 대화의 마지막 부분에 ‘불편함과의 균형’이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그때는 저 알 수 없는 결론에 서로 만족하며 자리를 파했던 것 같은데, 지금 돌아보니 어쩌다가 그런 말이 나왔나 싶다. 그래서 나는 그때 그 상황으로 돌아가 보았다.

 

기억을 더듬어 ‘불편함과의 균형’에 대해 생각해보니, 어떤 새로운 일이 일어났을 때 발생하는 긍정적 자극으로 인해 적절한 삶의 균형이 맞춰진다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리고 보통 새로움에 익숙해지는 것은 그에 따른 노력이 수반되니, 그 과정을 불편함으로 표현했던 것 같다. 결국, 연애 상담의 결론은 스스로 새로운 자극을 통해 권태를 벗어나라는 뜻이었다.

 

한껏 멋을 부린 이십 대의 허세와 같은 글이었지만, 우리는 때로 육체나 정신적인 건강의 균형감을 위해 불편함을 찾아야 할 때가 있다. 게다가 그것이 일상과 동화된다면, 불편함보다 그로 인해 생기는 긍정적인 부분이 더 크게 와닿는 경우가 많다.

 

나에게 있어 긍정적 일상이 되어버린 불편함이 있는데, 바로 사진이다. 나는 별일이 없어도 카메라와 렌즈를 매일같이 들고 다닌다. 요새 워낙 스마트폰 카메라가 잘 나와서 거추장스럽게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줄고 있지만, 나의 경우에는 심지어는 자동 초점기능이 되지 않는 수동 초점 카메라와 렌즈를 챙겨 나가는 날도 왕왕 있다. 표현과 사진의 질에 대한 집착이라면 별도의 카메라 사용으로도 충분한데 수동 초점이라니, 이것 역시 수동으로 하나하나 조작하는 행동에서 오는 불편함의 즐거움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선택한 불편함이다. 무거운 카메라는 척추의 건강과 기동성을 위해서는 불합리한 선택이고, 상업적으로 이용할 사진이 아니고서야 스마트폰 카메라로도 충분하다지만, 그래도 나의 기억과 기록을 위한 촬영은 역시 카메라를 사용해서 하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리하여 얻은 결과물의 행복감은 그 불편함을 상쇄시키고도 남는다. 따라서 나에게 이와 같은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삶의 균형감은 일상에서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매우 중요해졌다.

 

오래전 글을 읽고 있자니 만감이 교차한다. 선택하지 않은 불편함을 겪고 있는 요즘과 같은 시기에는 슬기로운 균형감이 더욱 절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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