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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너무 늦게 알게 된 몇 가지

 

팔순의 어머니는 지금 평택에서 혼자 살고 있다. 애틋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혼자사니 말 나눌 상대가 없어서 이겠지만 어머니는 다른 형제들보다 유독 내게 말을 많이 하는 편이다. 어머니가 화를 내거나 혹여 누군가를 비난해도 그냥 듣기만 한다. 자식에게 하소연하는 게 아니라 그저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고 싶은 심정으로 늘어놓는 말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어쩌다 이런 저런 일로 평택엘 가면 어머니와 둘이 소주 한 병을 놓고 앉아 옛날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주로 듣기만 한다. 무슨 말이라도 실컷 하시게 말을 끊지 않는다. 이미 여러 차례 하셨던 말이라도 추임새까지 넣어 드린다.

 

지난 백중 제사 때였다. 큰 제사도 아니고 요즘 그런 제사를 지내는 집안도 드무니 나 혼자 내려가 제사를 지내는 편인데 제사 끝내고 메모할 종이를 찾다가 우연히 수첩 한 권을 발견했다. 무심히 수첩을 넘기다 아버지 필체를 발견했다. 그건 아버지가 죽기 1년 전에 남긴 일기였다. 아버진 오랫동안 투석을 하며 식당 일을 하는 어머니를 도왔다. 시장에서 필요한 물건 사다주고 숟가락이며 젓가락 같은 것을 식탁 위에 놓아주고……. 그런 와중에 언제 일기 같은 걸 썼나 싶었다. 좀 신기했던 건 아버지 나이 칠순이 넘어서 일기를 썼다는 점이었다. 들춰보니 길진 않지만 하루의 소회가 짧게 적혀 있었다. 대통령 탄핵논의를 안타까워하기도 했고 어느 날은 다리가 몹시 아파 도저히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고도 적혀 있었다. 어느 날은 시장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적어 놓았고 하루는 좋은 꿈을 꾸어 로또 복권을 샀다는 문장도 발견했다. 그 짧지 않은 일기를 읽으며 나는 아버지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 수첩을 읽은 덕에 어머니에게 질문을 했다. 처녀 시절에 꿈이 뭐였수? 어머니는 말했다. 가수였지.

 

어머니 처녀 때 서울에서 학교 선생님을 하는 친척분의 집에 일주일 가량 묵은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가수를 해볼 요량으로 여기저기 알아보고 다녔다고. 고향에서 노래 잘하니 서울 올라가보라 권해서 올라갔었다고. 왜 끝까지 가지 않았느냐고 물었는데 어머니는 답이 없었다. 지금 묻는 게 부질없는 일인줄 알지만 그런 꿈을 꾸었었다는 걸 어머니가 다 늙어서 알게 되었다. 내게 지금보다 흥이 좀 더 많던 시절 어머니 모시고 노래방에 다니지 못한 게 안타까웠다. 이제 어머니는 자식들 상대로 수다 떨거나 누군가를 흉보는 재미로 살고 있다. 그리고 말 끝마다 늘 ‘얼른 가야지’라는 토를 단다.

 

그날 나는 아버지의 일기를 가져왔다. 그 속 유언의 말이라 짐작되는 한 두 마디 남겨 놓았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가족 누구도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던 것이다. 그 기록과 함께 어머니의 꿈도 가져왔다.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그리고 어머니도 나도 더 늙기 전에 같이 노래방 갈 수 있는 날을 하루쯤은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어머니가 잃어버린 꿈을 하루쯤은 위로해 주고 싶어서다. 나는 늦은 나이에 세상 물정도 모르고 철도 없이 소설가 되기를 꿈꾸었다. 내가 힘들게나마 이 길을 갈 수 있는 건 걱정하면서도 믿어주었던 두 사람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두 분에 대해 많은 걸 안다고 믿었는데 실은 아주 쬐끔 알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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